질투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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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03
2007-09-03(월) 사도행전 2:1-13 ‘질투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모 신문사의 교계용어순화위원회에서 발표한 부적절한 단어나 표현의
순화 안(案)에 의하면 성령님은 ‘성령’으로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추측컨대 ‘000 선생님 귀하’ 보다
‘000 선생님’ 또는 ‘000귀하’가 옳은 것과 같은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면 어떻고 ‘예수님’하면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로 모시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1장 5절의 약속에 따라 성령이 각자에게 임하여 방언이 터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함에, 방언에 관한 아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 여 년도 훨씬 전에 총각 시절에 다니기 시작하여,
결혼식 주례도 목사님이 맡으셨던 그 교회는 귀신론과 방언으로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예배 중에 통성 기도 순서가 되면 온 성도의 방언으로 예배당이 떠나갈 듯했습니다.
당시 나의 고난은 방언을 못하는 거였고,
그 교회를 떠난 이유 중에는 방언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前 목장에서, 성령과 악령에 관해 어떤 지체와 진지하게 나눈 적이 있었는데
진행 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 견해와 다르다고
목자의 권위를 앞세워 진지한 주장을 묵살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최집사님!
말을 잘 하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 찬양을 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언도 은사라고 생각됨에, 성령이 임해도 누구나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만 마디 방언보다, 누구나 다 아는 말로 가르쳐 남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말 다섯 마디가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성령의 강림과 방언의 은사는
초기 교회의 설립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라 생각됩니다.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그러나 요 며칠, 하나님의 칭찬이 아닌 사람의 칭찬이 부러워
사단에 틈을 보여 성령이 떠나고, 그 자리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음을
내 마음의 감찰자이신 아버지께 자복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으로 양육하시기 위해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여(롬 11:15) 복종시키려 하셨던 것처럼
질투로 내 마음으로 요동케 하셨던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시니
성령이 떠나고 악한 영이 들어오자 질투의 화신되어
멸망의 길을 걸었던 사울처럼 미련한 자 되지 않기를,
질투의 마음을 통해
100%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깨닫고
내 죄를 드러내어 회개하는 성령의 역사가 매일 일어나기를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