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3:1-14)
“메스 (칼)”
간호사가 내 오른손에 쥐어준 칼이 환자의 피부에 들어갑니다. 수직으로 가다가 머리카락이 있는 부위에서는 약간 사선으로 들어갑니다. 흉터를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붉은 피가 흘러나옵니다. 간혹 혈관이 숨어있으면 제 옷과 얼굴에도 선혈이 튑니다(3). 하지만 절개하는 그 순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이 건강한 부위는 피가 나야만 하고, 쉽게 아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혹 수술 중에 칼이 들어갔는데, 피가 나지 않으면 놀랍니다. ‘마취과 선생, 환자 괜찮아?’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피가 나지 않습니다. 혈압이 떨어지면 피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큰 일 입니다. 피를 보아야 안심이 됩니다.
또 종양절제를 위해 종양주변 건강 조직에 칼이 들어갔는데, 피가 나지 않으면 순간 긴장을 합니다. 대부분 종양은 피가 별로 안나기 때문입니다. 종양은 보지도, 만지지도 말고 건강한 조직으로 싸서 통째로 절제하는 것이 최선인데, 칼이 종양을 가른 것입니다. 그러면 더 경계를 두고 절제하는 수고와 더불어 재발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수술만 하던 제가 우리들 공동체에 와서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피흘리기가 두려워 주저하니, 앞선 환자가 아픈 것은 잠깐이고 지금은 건강하다고 자랑스레 흉터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내 종양은 음란이요, 인정이요, 성공이요, 자식이요, 교만이요, 바람이요, 주식이요, 노름이요, 돈이요, 술이요,..’ 합니다. 서너개 종양은 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수술 받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내 안의 종양을 제거하려면 피를 흘려야 하나 봅니다. 내안의 원수(4)를 제거해 주실 붉은 옷(1)을 입으신 의사가 ‘어디 계시냐(11,13)’하고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수술로 피흘리는 '하루'의 수고로 내가 건강히 '한해'를 살 수만 있다면 수술을 미룰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 원수 갚는 날(day)’, ‘내가 구속할 해(year)’라고 구별하셨나 봅니다(4). 그런데 여전히 내 눈에 잘 안보이는 종양이 내 안에 많은 듯 합니다.
적용> 오늘 하루 직장의 질서에 순종하고 비판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고 싶은 때 꿀꺽 침을 세 번 삼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