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교회를 햇수로 10년을 다니면서도
8년이 되도록 말씀에 엎어지지도 않고 떠나지도 못했던 것은 일종의 미스테리였습니다.
미스테리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30대 후반 유명 연구소의 박사로, 유명교회 구역장으로,,
그렇게 새벽기#65279;도와 말씀에 흠뻑 젖어 살다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고 방황하다가 우리들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결혼과 참지 못하고 옮겨간 새직장에서
나의 자아와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이 시기에 아기까지 생기면서
경력은 단절되고 예배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번듯한 명함이 없어지자 옛 동료들과 친구와 가족들도 나를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았고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곤두박질쳐진 나의 인생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름 외형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서
교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비판받고 평가받으며
적용할 능력이 안되는 처방 때문에
눌리며 지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했다고는 하나 결국 나를 우상삼는 나의 죄악이
저와 하나님의 사이를 갈라놓았고,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자기를 우상삼는 저의 죄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1절)
양육을 거부하는 저를 곱지 않게 보는 우리들교회에 대해서는
은혜를 공식에 담아 만들고 측량하는 것 같다고 오히려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엮이기 싫다’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남편이, 이상한 직장이, 편견에 가득찬 교회가 나를 괴롭게 한다고 불평하며
스스로 굽은 길을 걸으며 평강을 알지 못한 채 그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8절)
그 어둠이 그렇게 길었던 이유, 그리고 다시 말씀이 들리는 이유는
나의 이름을 우상삼는 나의 죄악과 오래 참으시고 고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로부터 얼굴을 돌리시게 한 나의 죄악과,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시고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풀어주신(16절) 하나님의 사랑이
저의 미스테리의 전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다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내 공로가 하나도 없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회개 후 50이 넘어 다시 국책연구소에 다니게 되는 이상한 일이 생겼고
강북에서 강남으로 먼 출퇴근 길에 하루 두시간 가까이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다시 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목이 메었습니다.
40대 후반에 건강하게 태어나고 자나고 있는 아들이
내가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낳으신 것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들 교회로 보내셔서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게 하셔서 세상에 나온 아이입니다.
아이가 크면, 엄마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이름을 우상삼은 그 죄악으로 인하여
얼마나 오래 어둡고 긴 터널을 외롭게 지나야 했는지 들려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입에 두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들의 입과 또 그 아들의 입으로 전해지며 떠나지 않으시리라 한 여호와의 말씀(21절)을 주께선 낳아주신 저의 아들과 나눌 것입니다.
진멸되었어야 하는 저를 보존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대로 사는 것 밖에는 갚을 길이 없는 것임을
앞으로 살아갈 날 들 동안 아들에게 증거하며
엄마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도록 기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