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으로 다니던 교회를 떠나 유리방황하던 때 지인의 소개로 우리들 교회 수요예배에 나왔습니다.
식당에서 예배드리던 시절 수요일저녁이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학생들 뛰는 소리에
천정이 쿵쿵 울려 시끄러웠습니다.
말씀이 끝나면 목사님과 성도들이 손에 손을 잡고 빙 둘러서서 마침기도를 했습니다.
1990년 김진홍목자님이 주강사로 오신 제 2회 미국 코스타에서 강사로 오신 김양재집사님의 특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기에 목사님에 대한 확신으로, 교회에 대한 확신으로 등록을 하였습니다.
우리들 교회 창립 1주년이 되기 전에,,,,,
그때는 새신자가 교인들 앞에서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 때 저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맨날 지지부진하는 지긋지긋한 신앙을 이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예배가 무너지면서 그 지지부진은 지겹게 계속되었습니다.
결혼 후 1년도 안되어 이혼할 이유가 수백가지가 생기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고위층의 미움을 받아 어이없이 나오게 되고
자존감이 다 무너진 채로 시간강사로 아이 엄마로 낑낑대며 살았습니다.
여전히 큐티는 하지 않은 채...
이전 교회에 다닐 때 받았던 깊은 은혜의 기억만을 가지고 언젠가 회복되리라 하였지만
말씀은 나를 비껴갔고 목사님의 말씀들은 이미 내가 다 아는 것들 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내 귀는 말씀이 들리지 않는 귀였습니다.
2011년 여름 경 버티고 버티고 하던 저는 마침내 항복하고 다시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큐티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 시작하고 (비록 매일 못읽어도 꼭 챙김) 되든 안되든
본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호세아서에서 마참내 하나님이 제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백성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야 했던 하나님의 깊고 불같은 사랑을 다시 깨닫고
운전을 하면서 회개와 감사로 전율을 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2012년 6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큐티는 계속되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니 나의 패역함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멸되었어야 했던 나의 과거가,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치시고 고쳐가실 나의 미래가
그리고 나를 징계하셨으나 다시 말씀을 듣게 하시는 나의 오늘이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나의 죄가 보이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들 교회 10년을 다니고 이제 겨우 큐티 2년을 하며 아직도 새신자입니다.
경제학 박사보다 더 오래걸린 일대일 양육(2006년 시작해서 2012년에 끝남)...
번듯한 명함 갖고 내 시간 내 맘대로 쓰고 다닐 때보다
집안일하고 애키우며 주부생활이 이렇게 힘 든건지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비로서 나타났던 감사,.,
10년전보다 많이 쇠약해 보이시는 목사님과 웅장하게 우뚝 솟은 판교채플,,,
모든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24년전 워싱턴 코스타에서 쩌렁쩌렁 하시던 김진홍목사님과 젊고 고우셨던 김양재목사님을
'미녀와 야수로'(어제 예배 참석하신 분들만 이해하심) 판교채풀에서 다시 한자리에서 뵈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두 분 목사님의 사역의 길을 경이롭게 이끄신 하나님께서,
우리들 교회를 8년을 다니면서도 말씀이 안들렸던 미스테리,
말씀도 안들리면서도 떠나지도 않았던 미스테리,
그리고 50이 넘고 신앙생활 25년이 되어서야 다시 말씀의 기초를 알려주시는 미스테리를 허락하십니다.
긴 어둠을 지나면서 이미 죽은 것 같았지만 제 안에 불씨가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또 넘어지고 나의 죄와 싸워갈터이지만
날마다 말씀으로
신비롭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실 하나님의 은혜에 미리 마음이 콩당거리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