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6:9-13)
어제 말씀에 따라 적용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을 해결 했습니다. 전화로 양해를 구하며 이해를 구했습니다. 주님이 슬퍼하실 일은 아니지만,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일 같아 욕심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나 기쁩니다. ‘습관에 따라’ 한 큐티일 뿐인데, 여기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믿겨지지 않습니다.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어제 안그랬으면, 오늘 말씀에 얼마나 힘들어 했을 지 상상이 안갑니다. 맹인, 벙어리개, 탐욕, 몰지각, 자기 이익, 독주 (10-12)... 모두가 저의 이야기입니다. 패역, 거짓, 음욕, 침상, 거짓, 우상 (3-13)... 변명으로 피해 볼 만한 단어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경고의 말씀 중에 눈에 띄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11)’
실제로 스스로 공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려고 한 일이었는데......
오늘 그 어떤 경고의 말씀보다 이 말씀이 가장 무섭습니다.
'나의 공의'라 여기며 남도, 나도 속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을지 겁이 납니다.
그래도 마지막 한 줄, 주님이 위로의 한 말씀을 잊지 않으시니, 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13)’
적용> ‘나의 공의’로 착각하며 또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장으로, 가장으로, 목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