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토요일
제목: 또 위로
이사야 54:1-17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결혼 1년 반은 주말 부부로 피임을 했고, 그후 3년.... 아이가 없었다.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다고 나는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 낙심하고 또 낙심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요... 하나님, 맞는 말씀이긴 해도요... 그래도 하나님.. 너무 아쉽고, 너무 해보고 싶고, 나도 누리고 싶어요. ”
내가 당하는 수치가 두려웠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게 싫고 무서웠다.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웠다. 서러움에 울었다. 내가 당하는 서러움, 수치, 치욕... 어찌 잊고 어찌 기억하지 못하랴! 새기고 또 새겼다. 그래서 시도한 게 시험관 아기였다. 기도를 부탁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궁에서 크는 게 아니면 어때? 시험관에서도 괜찮지... ” 하는 위로... 위로하고 싶은 그 마음은 고맙지만, 불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수 있는 그의 처지가 한 없이 부럽고 그런 말을 듣는 내 처지가 슬펐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셋째를 낳는 사람도 부러웠다. 입덧이 심하다고 꼼짝 못하는 그 사람도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임신이 되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고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 나만 모른 척 하시는 것 같은 무정함에서 내게 보여주는 관심과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했다. 나는 다른 사람 다 하는 입덧도 안 했다. 양치질을 하다가 웩~ 헛구역질이 나오길래, 와~ 나도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는데... 그건 입안 저 안쪽 혀까지 닦는다고 하다가 잠깐 나온 구역질이었다. 입덧을 안 한다는 말에 어떤 이는 “시험관 아기라 그런가 봐” 하는데 그 말에도 마음이 상했다. 그말을 내게 건넨 사람은 의료인이었다. 믿음 좋은 신앙인이었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게 없는가? 언제까지 꼬리표가 따라 다닐까? 나는 그 말에 풀이 죽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쭸더니 뜨악한 표정이다. “임신 과정만 돕는 것이지 나머지는 다 똑같습니다.” 그 말이 고마웠다. 모든 사람이 다 입덧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나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수치와 치욕을 잊을만한 준수한 아들들, 하나님은 쌍둥이를 선물로 주셨다. 내가 비록 떼부리는 기도를 해서 얻은 아들들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고자 내 앞서서, 내 뒤에서, 행하시고 호위하셨다. 아들들은 건강하게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랐다. 임신한 내내, 양육하는 내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어떻게 이런 예쁘고 귀한 아들들을 내게 주셨을까? 후대하심에 감사하고, 준수함에 눈이 멀어 감사하고 감격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의 우상으로 아들들이 차지했다. 말하는 것도 예쁘고, 표현하는 것도 기특하고 대견하고, 먹는 것도, 똥누는 것도, 우는 것도, 삐치고 화내는 것도... 너무나 예쁘고 예뻤다. 유아실에서 예배드리는 자리, 집중해도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양육에 치여 형식적으로 앉아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말씀 없이 산 세월이 5년이었던 것 같다.
말씀에 대한 갈증은 느끼면서도 결핍의 원인이 내 안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큐티 세미나, 말씀 집회를 찾아다니면 그동안의 불균형을 메꾼다고 열심으로 좇아다녔다. 참으로 시원했다. 해갈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밖에서 채워지는 만큼 안에서는 더한 갈증이 생겼다. 이제는 교만으로까지 이어졌다. 판단하고 정죄하기까지 했다. 나의 악, 본질이 드러났다.
여호와께서 나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나는 음행의 연고로 하나님 한 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음을 노래하다가 하나님 앞에 남편을 구하고 또 구해서 결혼을 했다. 25살 2월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생각해도 어릴 때였다. 나의 안위와 만족이 목적이었다. 든든하게 나를 보호할 것 같은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 그늘 아래서 감사하고 감사하다가 점점 나의 우상으로 남편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 4월, 생각지도 않은 남편의 거짓과 음란에 아직까지도 또 새기고 또 새기며..... 남편에게서 그렇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감, 수치감에 괜찮다가도 우울하고, 괜찮다가도 슬프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내 남편이라고 하신다. 나를 지으신 이, 하나님이 내 남편이라고 하신다. 나는 분명 떠났건만.... 나는 나의 이기심으로 떼부리다가 떠났건만.... 그런데 잠시 진노로 얼굴을 가리셨다가 영원한 자비로 나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말씀하신다. 노하지도 책망하지도 않겠다고 맹세하셨다고 위로하신다. 하나님의 자비는 내게서 떠나지 않고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늘 곤고하고 광풍에 요동하고, 안위를 보장 받지 못하는 자인지만, 하나님이 기초를 쌓고 성문을 만들고 내 지경을 꾸미며 자녀가 여호와의 교훈을 받으며 평안이 있고, 공의로 설 것이고 학대가 멀어진다 말씀하신다.
나를 돌아보고 돌아보니, 내 삶의 기준의 나의 안위와 만족이었다. 그래서 떼부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하나님이 분노하심으로 주시는 것인 줄도 모른 채 그저 준수함에 속고 속았다. 그런 나의 죄악 앞에서도 하나님은 깊은 위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버리고 육의 남편을 좇아, 육의 자녀를 좇아 간 음란한 인생임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해 맹세하시고 맹세하신다. 내가 자랑할 제목이다. 우리 하나님이 나의 참 남편이신 것,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구속하시는 거룩하신 이, 온 땅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 내 노래가 내 슬픔이었지만 하나님이 내 노래를 바꿔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안에 무기력과 우울이 여전히 숨어있지만 하나님이 하나 하나 드러나게 하셔서 바꿔주시고 꾸며주시니 감사합니다.
6월 16일 주일
제목: 기울이고 들으라
이사야 55:1-1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수고했던 나, 이제 하나님께 듣고 듣고, 공동체에 속해서 듣고 듣고,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고 있다.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고 하시는 우리 주님! 하나님 앞에 나아와 듣고 또 들으며 내 영혼이 살아나고 있다.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며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시는 주님, 긍휼히 여겨주시는 주님, 용서해주시는 주님! 감사하고 감사한다.
내 안에 뿌리 깊은 우상, 여전히 아들은 내게 거짓을 행하고, 또 속이고 속이는데... 나는 여전히 요동하고 요동하고 요동하는데... 하나님이 네 안에 우상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사건들 앞에서 그저 무릎 꿇으며 내 죄 보기를 기도한다. 아내인 나보다는 다른 일들이 너무도 중요하게 느껴지는 남편, 시험기간이지만 내가 짐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 오케스트라에 간다면서 나가서 늦게서야 돌아오면서 그것도 잘 다녀왔노라고 말하는 아들을 봐야 하는 내 죄. 가시나무처럼 찌르고 찔레처럼 상처를 주지만 하나님이 잣나무로 석류로 대신한다시니 내게 주신 표징이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서 주시는 말씀의 표징이다.
6월 17일 월요일
제목: 하나님의 인도
이사야 56:1-8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내 발자취마다 내 걸음마다, 내 손길마다 죄악이지만... 하나님이 아름다운 출발을 하게 하시는 말씀에 감격한다. 내 백성이기 때문에, 내 자녀이기 때문에 나를 책망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시는 하나님, 기쁘게도 어제는 판교채플 헌당식, 그 역사적인 현장을 목도하게 하시는 증인으로 세워주셨다. 감격하고 감격하며 감동적이다.
나는 여전히 내 암나귀에서 못 벗어나고 하찮아 보이는 감정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요동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내 안에, 우리 집에 예수를 세워가신다는 말씀에 또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 겸손과 눈물과 인내가 있는 우리들 교회에 속하게 하셨는데, 가장 중요한 말씀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세워가시는 그 일에 나도 동참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고자이지만, 나는 이방인이지만.... 거기다가 모태도 아닌 것을, 하나님이 불러주심으로,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음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성 안에서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하시는 나의 주님! 기도하는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게 하시고, 만민이 모여 기도하게 하시는 나의 주님, 모으시고 또 모으시고 또 모으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복된 초청의 자리에 나를 불러주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 가기가 어렵고 또 두렵지만, 판교 채플 예배에 참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