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54;1-17
QT책을 폈을때 그날 본문 내용이 많으면 약간 부담스럽고 적으면 마음이 가볍습니다.
또 길어도 쉽게 읽혀질때가 있고 짧아도 걸리는 부분이 있어 오래 읽혀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짧은 본문이 좋습니다.
오늘은 길어도 쉽게 읽혀지는 또 내 얘기입니다.
그동안 다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누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시고 나누었어도 기억해야할 부분은 다시 듣게하십니다.
바벨론에서 아이가 없었던 사람은 힘든 포로생활에 자식까지 없으니 이중의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혼도 당했는데 다 뺏기고 아이까지 못보게 되는 고통에 비견될지 모르겠습니다.
이혼당한 수치는 말할 수 있겠는데 자식은 보냐는 질문에 자존심이 무너지고 아픈 곳을 찌르는 것같아 말하기 싫어지고 미워지고 화가 났습니다.
아직 내가 외쳐 노래하지 못하고 위로를 위로로 듣지 못하는 것은 내 삶을 온전한 구속사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이 찾아가 주실 것이다, 천국에서 만남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들을 진정 위로로 듣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이 구속사로 깨달아지기는 하는데 마음이나 삶은 그렇지를 못하니 나의 성전 재건에서 줄을 길게도 못하고 말뚝을 견고히 하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지금 성전을 중수해야 내가 죄우로 넓어지고 내 자녀들이 살고 주변의 황폐한 사람들이 살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나의 수치를 두려워말고 나의 부끄러움에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거 부와 자식의 노예생활과 돈의 포로생활의 치욕을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평안과 자유를 누리라고 하십니다.
이를 말씀하신 이는 내가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남편 되시고 만군의 강력한 여호와시며 나를 구속하여 이끄신 분, 평생 바래야할 거룩하신 이, 온땅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때는 정말 버림받은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부르고 외쳐도 허공이고 기도후에는 냉냉함이 싸아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버림받은 것같아 기도굴까지 찾아갔지만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잠시였고 곧 큰 긍휼로 부르셨고 영원한 자비로 품어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작은 인생에 홍수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을 나보다 더 잘아시는 주님께서 나보고 곤고하다고 세상광풍에 요동하며 안위를 받지 못한 자라고 부르시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 크신 예수님의 삶에 비하면 그 많은 순교자들의 삶에 비하면 우리들교회 교인들의 고난에 비하면 깜의 깜도 안되는데도 주님께서 곤고한 이름으로 불러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주의 하시는 일을 보라고 하십니다. 나의 성전을 견고하고 화려하게 지어주실 것이고 또 내 자녀들은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고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할렐루야입니다. 그동안 애비없는 딸로 자라는 것이 마음 아팠는데 때가되니 하나님께서 키워주신다는 것같습니다.
주님.
풀어지지 않는 수치였는데
말씀으로 풀어주시니 해결이 된 것같습니다.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을 진정 누리는 자가되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Jesus Name Amen
적용> 나에게 주는 충고와 위로를 겸손하게 귀담아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