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예수님에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서른 남짓의 짧은 생애에 참 많은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받으신 것들이 멸시, 버림, 간고, 질고, 우리의 슬픔, 찔림, 상함, 채찍 등등…
지금까지 제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예수님은 믿음이 매우 좋으신 분,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세상의 불의에 절대 타협하지 않으시는 분, 불굴의 의지, 목수 출신, 육체적으로 강인한 분,그래서 위에 언급한 많은 것들을 받으시고도 굴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 등 비교적3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나오는 여러가지 받으신 것들보다 그 앞의 한 구절이 유난히 제 마음을 아프게 찔러옵니다.
1절.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오는 뿌리 같아서”.
연한 순….부드럽고 연약하고 쉽게 상처를 입을 것 같은 그런 연한 순. 예수님도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어린 시절이 있었겠죠. 주 앞에서 연한 순처럼 자라던 아이, 부모님께 순종 잘하며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 그 아이가 자라면서 뿌리가 되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세상은 어린 뿌리를 밟고 차고 상처주는 메마른땅이었습니다.
연한 순과 뿌리에서 제 딸들이 연상되며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합니다. 그여리고도 연한 어린 순, 어린 뿌리가 마른 땅에서 밟히고 차이며 신음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문득 얼마전 신문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글귀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떠오릅니다. 60년대 후반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22살의청년이었던 그가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다 못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했습니다. 22살…. 현재 제 큰 딸과 같은 나이였기에 그청년의 힘들고 괴로웠을 시간들이 떠오르며, 불길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전태일에게서 예수님의 모습 한조각을 본 기분이었고, 메마른 제 가슴에 그래도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것은 자식에 대한 애틋한 감정 뿐인가 봅니다.
오늘은 특별히 뭔가 적용거리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냥어린 순처럼 주님 앞에서 자라나 마른 땅에 나오는 뿌리처럼 밟히고 차이고 상처받다가 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고 가슴이 아파오는 만큼 그냥 아파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