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목요일
제목: 멸망받아야 할 바벨론
이사야 47:1-15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나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막혀서 듣지 못해도 너무나 못 듣는다. 나는 우리들 교회에 와서 말씀이 들리냐는 질문에, 말씀이 너무도 잘 들린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아니 이 교회에 등록하기 전부터 목사님 말씀이 너무 좋았다. 목사님 책을 통해 받은 은혜가 너무도 컸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이 안 들리냐는 질문이 의아했다.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떻게 안 들릴 수가 있지? 말씀이 안 들린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홍수처럼 들려주시는 말씀에 사치하고 평안했다. 장차 들을 재앙의 말씀을 미리 듣게 하시는 복음, 지금 듣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그 말씀에도 아멘이었다. 그런데 입으로는 아멘! 하면서도 한 가지라도 소화되어야 하는데 말씀은 홍수처럼 밀려들고 쏟아지는데 내 안에서 소화되고 흡수할 시간이 없었다. 그 말씀은 기쁘게 들을 그 때 뿐, 아! 좋다. 시원하다! 저렇게 하나님 심정을 잘 헤아리실까! 거기에 만족하며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야곱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지체들의 고백, 야곱이라고 부르짖으며 음란과 거짓을 간증하는 지체들의 선포가 내 적용인 양 착각하며 우리들 교회에 속했다는 것이 능력이고 벼슬인 양 으스댔다.
주일 예배는 물론, 목장 예배, 수요 예배, 작년 말부터는 부부 목장 예배까지... 또 아침마다 흉내 내기에 불과한 큐티지만 큐티와 새벽 기도.. 직장에서 신우회 모임, 모든 예배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개인 경건 생활에도 충실한다고 하면서도 내게는 남은 게 있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고 싶다고 입으로는 외치고 있었고 witnesses라고 써 있는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지만 내 안에서는 세상의 증인으로도 서고 싶었던 나의 악이 있었다. 특히, 부부애의 증인, 자녀 교육의 증인으로 과시하고 싶었던 죄가 있다. 남편을 만나면 그게 어디서든 설레고, 즐겁고 남편이랑 있기만 해도 좋았다. 남편은 나의 애인이고 연인이었다. 하나님의 후대하심으로 기도 응답으로 주신 쌍둥이 아들, 잘 생기고 멋있고 반듯한 내 아들! 처음에 아들을 주셨을 때는 나를 부모로 불러주신 그것만으로도 감격하며 감지덕지하며 감사했다. 이 세상에 나를 보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들이 하나님 은혜로 이땅에 있게 하신 것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본 증인으로 간증거리였지만.... 내가 처음부터 우상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남편과 자식, 거기에 또 내가 우상이 되어 점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상을 만들고 살았다는 게 너무도 두렵고 놀랍기만 하다. 내가 그럴 줄 몰랐다는 게 더 무섭다. 악하고 음란하다고 말로는 하면서도 너, 최현희가 그럴 줄 몰랐다니.... 나의 무지와 무감각이 두렵다.
나는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인생, 망하고 몰락해야 할 나는 바벨론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기업을 욕되게 했고, 긍휼히 여기지 못하고 체휼하지 못했다. 멍에를 무겁게 메게 하면서도 나는 복음 안에서 잘 되는 모델을 보이는 게 사명인 양, 말씀 안에 살기 때문에 얻는 세상 복이 이렇다고 과시하고 싶고 그걸로 사람을 끌고 그걸로 예수를 전하고 싶어 했다. 십자가 복음 하나로는 부족한 양, 옵션으로 세상 복음을 껴서 전하고 싶은 나의 악이었다.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했던 교만했던 인생, 남편과 자녀가 교회 안에 있다는 것으로만 자랑으로 여기고 우상으로 삼고 살았던 인생에게 하나님이 후대하심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지혜, 재앙을 주신 것에 감사하다. 내 옆에만 있으면서 언제나 울타리로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았던 남편, 나의 감람나무로 자랑거리였던 아들, 나 때문에 수고하게 된 것이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나로 인해 수고하고 있다. 그게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하다. 하나님께도 남편에게도 아들들에게도...
이제 내가 멸망 받아야 할 바벨론임을 듣게 하셔서 알게 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의뢰한다.
♡ 내가 멸망 받아야 할 바벨론임을 알게 하시고 듣게 하신 주님, 나의 악과 죄를 용서하시고 이 가정에 구원을 이뤄주시옵소서.
6월 7일 금요일
제목: 들었으니
이사야 48:1-11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들을 수 있는 환경이 감사다. 야곱의 집, 거짓과 음란한 내 집을 향해 들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받은 은혜를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는 나의 중심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을 믿으니 거룩하다, 의롭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만군의 여호와라 하나님을 불러왔다. 하지만 주님은 잘 아신다. 나의 완고함! 쇠심줄 같이 질기고 딱딱하여 그 어디에도 새길 수도 없는 질기고도 무딘 나!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인가! 하나님이 이미 아시기에 듣게 하셔서 내가 세운 내 신상, 내 우상으로 인하여 새 일이 이루어졌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미리 듣게 하시니 감사다. 말씀 공동체에서 듣고 가게 하시니 감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다. 말씀 들리는 게 축복이다. 사건 해결이 회복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오신 것이 회복이다.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을 통치하는 것이다. 내게 주신 말씀을 식별하여 회개할 수 있는 응답! 말씀 들리는 응답! 귀한 공동체에서 붙어감으로 얻을 수 있는 축복임에 감사하다. 이런 귀한 말씀을 우리 목사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다.
그럼에도 나는 내 컴퓨터 비번을 ‘십자가 분별’이라고 바꾼 지가 언제고... 십자가 지혜, 십자가 분별력을 주세요! 기도하며 적용하려고 한 지가 언제인데... 여전히 나는 넘어가질 못하고 있다.
남편에게도 내가 할 적용만 하면 될 것을... 내 안에서 하나님과 모든 게 깨끗하고 투명하게 정리가 되었음에도 남편의 반응에 요동하는 건 또 뭔가? “다시 또 겪고 싶지 않아요”라는 내 말에 남편은 너무도 가볍게 다른 사람들은 더한 일도 겪는데 이런 일은 별 것도 아니란다. 그 말에 속이 뒤집어지고 마음이 상했다. 뚫린 입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적어도 염치는 있어야지, 남편의 자신감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 왜냐면 악하고 음란한 우리 가운데 자신있을 사람이 그 누구랴! 그리고 남편이 문제를 푸는 방법도 마음에 안 든다. 남편은 모든 일을 항상 몸으로 풀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다. 오늘 집에 있는 남편을 위해 밥과 반찬을 준비해놓고, “당신 밥 해놔서 고맙지요?” 했더니 “고맙긴 뭐가 고마워~ 오늘 일찍이나 오쇼~” 하는데 헐~~~~ 내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는지, 미안하다는데..... 우리 남편은 나를 괴롭히는 걸 즐기고 재미있어한다. 이상한 언어다. 나는 존중해달라고 하는데 시작은 존중이더라도 그 끝은 꼭 짓궂은 장난으로 가볍게 끝난다. 나는 그게 싫다. 안에서 나와 있을 때, 진지해야 할 때는 진지하지 못하고 밖에서 가벼워도 될 상황에서는 너무나 긴장하고 무겁다.
♡ 남편과 아들로 인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편과 아들의 반응에 요동하지 않고 내 인생에 오신 그리스도로 인해 감사하겠습니다.
남편과 아들, 나를 우상 삼았던 나의 악과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이 택하신 고난의 풀무불을 신뢰합니다.
시마다 때마다 내가 죽음으로 십자가 분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