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의 교통사고로 장모님은 집이 인천인데도, 아직 전원을 할 상황이 되질 않아 천안에 계십니다.
처남이 의식은 없다지만 그래도 '죽고 살지 못하리라'(38장 1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상당부분 자가호흡을 하는 지금은 산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상황이 좀 나아지다보니 '든든한 사위, 믿음 좋은 사위, 말씀 잘 해석하고 사명감당하여 장모님 모시고 온 집사, 자랑스런 내 남편'의 '나무 우상'(21절)이 어느새 호주머니 안에 있습니다.
'이제 좀 깨달으셨겠지? 그러니 장모님 천안터미널까지 택시타고 가서 시외버스 한번타면 야탑터미널로 올 수 있으니까,
주일날 오시라 그래'
이 만큼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렸으니, 장모님은 올 수도 없고 안 올수도 없었나 봅니다.
'주일은 여기서 예배 드리고, 수요예배는 꼭 갈 께 권서방'
'휴~ 아직도 멀으셨구만...말씀만이 살길인데' 정죄는 안하려고 의식하면서도 이미 마음은 굽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윗 질서로 부터 내려온 처방은 전원을 하거나 좀 더 나아지면 나오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새벽큐티설교에 '노하는 것'(24절)은 '얼굴이 빨갛게 되어 절제를 잃고 미치는 것'이라고 했는데 딱 그꼴이 된 것입니다.
제 처방이 '느그들교회' 처방이 되어 '부끄러움'(24절)을 당했습니다.
역시 때에 맞지 않는 적용을 부르짖고,
말씀만이 살길이라는 문자적 해석을 들이대며,
아직도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아들을 두고 우리들교회에 장모님을 오시라고 한 저 입니다.
우상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20절)' 에서 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 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목장에 나온 지 2년이 넘었고, 부목자도 되었는데 노트필기 한 지 두어달 밖에 안되니 '옛 부터 듣게 한자'(21절)의 말씀이 들릴리가 없었습니다.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습니다.(24절)
최근에 말씀 좀 봤다고, 공의와 힘이 제게 있는 줄 착각했습니다.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18절), 우리의 환경과 주변의 사람들의 관계도 조성해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혼돈하지 말고,(19절)
하나님의 때에 창조하신 그 환경에서, 장모님 마음에 우리들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나오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열방중에 피난한(20절) 장모님이 꼭 우리들교회에 나오셔서 한 성령으로 가길 원합니다.
적용)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튀고 싶은 만큼, 장모님이 오시길 바라는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