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프칸 피랍사건을 일으키신 이유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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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8.21
잠언 26:17-28
아프칸 피랍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 사건이 우리 한국 교회에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뒤늦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실은 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면서부터 속으로 은근히 궁금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동안도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만큼 우리나라에 온 교회와 세상이 한꺼번에 같이
들썩이며 비난하고 주목하는 사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중에 박국진씨와 저는 우리들교회에서 같이 예배드리는 후배 두 명을 만나
남산 산책로에서 함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후배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너희는 아프칸 피랍자들을 위해서 같이 마음 아파하며 진심으로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냐고..
순간 둘 다 약간 부끄러운 듯이 계면쩍은 얼굴로 삐죽이 웃으면서 아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그들 피랍자들을 위해 같이 마음 아파하면서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없었고
기도하려고 해도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 제 자신에 대해 약간 죄의식이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잠깐 생각을 해보면, 피랍자들과 그 가족의 고통과 아픔의 깊이가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 잠시 큰일이라는 생각에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 왠지 그 기도가 형식적인 기도가 되고
당연히 애통해져야할 제 가슴은 그저 맹하니 둔하기만 해서 별로 눈물도 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정한 소리가 되겠지만 그 일이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남의 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납치된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이 남의 일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남의 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저는 또 그런 제 자신에 대해 죄의식과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는
또 하나의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 큰 소리로 부르짖은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주님의 지상명령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할 사람들과 복음을 받아야할 사람들을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자로 여긴다면
그것은 자신을 예수와 아무 상관없는 자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 되므로
영원한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 같이 그것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가 될 것입니다.
평소에도 우리 네 사람은 그 죄를 많이 짓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자기 믿음 때문에 그 죄를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프칸 피랍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겉으로 드러나서
우리 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숨은 죄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네 사람이 그랬다면
현재 피랍자들과 직접 관계가 되어있지 않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 성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들이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들 피랍자들은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 속에 숨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그 죄를 다 드러내고
각자가 또 스스로 자신의 죄를 다 볼 수 있게 해준 십자가의 귀한 공로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숨은 죄를 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죄인을 보더라도 자기와 다르지 않는 똑같은 사람으로 볼 것이고
사람을 똑같이 동일시 해서 보는 그 마음이야말로
둘을 하나 되게 하는 주님의 사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샘물교회 23명의 성도들도 주님의 그 사랑을 가지고 아프칸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아프칸에서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은
먼저 아프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아프칸 보다 먼저 당신의 자녀 된 우리 한국 교회의 성결을 하나님은 더 원하신 것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다 자기 속에 숨은 죄를 보게 하기 위해 일으키신 하나님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샘물교회 23명의 성도는
먼저 아프칸의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선 우리 자신들의 죄를 우리로 먼저 보게 하기 위해
저 먼 나라 땅끝까지 가서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우리 속에 숨은 그 죄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는 우리의 그 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네 사람은 또 나눔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장 큰 그 죄를 다 없애기 위해
지금부터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상관하여 억지로라도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려고 애써 노력해야하는가?
그냥 우리가 우리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있으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어떤 죄인을 볼 때 최소한 자기와 다른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 테니까..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보고 죄인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진실 한가지, 그것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여 상관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나?!..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잠깐 먹구름이 끼려다가..
그 중 제일 막내가
우리는 아프칸을 사랑하지 않지만, 아프칸으로 간 사람들은 아프칸을 사랑해서 간 것이겠죠..라고 말해서
그러면 우리도 우리가 기도만 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고 간절한 마음이 되는 사람들이 또 따로 있으니까..
그 말에 우리의 지경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속에 다시금 기쁨이 솟는 것을 느꼈고..
그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각자의 지경을 다 따로 주셨나보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할해서 각각 따로 다 나누어주신 것을 보니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 지경의 사람들만 사랑하고 상관하면서 살면 되겠네.. 하고 다같이 결론을 맺었습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잠언 26:17-19
오늘 큐티는 그날 우리가 남산에서 미리 나눈 것이 되었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읽어보니 참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작년겨울 설날 아침에 제가 우리들교회에 들어와서 우리 정체를 밝힌 것이
어느새 일년 반 전의 일인데
말과 마음이 다를 때 라는 제목으로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은
그동안 우리들교회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나게 해서 제 입가에 피식 웃음이 돌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