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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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8.20
채형제님으로부터 한 달 전부터 참여하자는 2007 전문인 성서한국에 그동안 기도하면 준비를 하였습니다.
저는 약 1년 정도 채형제님과 개인교제를 하고 있지만 자매는 직장일이 힘들어서 함께 교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매에게 함께 가자고 종용을 하였지만 일이 힘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도 집에 남겨두고 가기가 어려워서 함께 가기를 망설이는 것을 이왕 새로운 곳에서 신앙에 대한 도전을 받아보자고 권유를 하였습니다.
당일 날 다시 권유를 하였더니 함께 갈 수 있다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오후 6시에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자매의 직장근처인 곳에서 전형제님과 카풀을 하여 그곳으로 행하였는데 가는 도중 차가 많이 밀려서 시간이 거의 9시 정도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제가 길치라서 전형제님과 카풀을 하였는데 함께 교제하며 즐겁게 다녀왔으며 안전하게 다녀오도록 도와주신 형제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성서한국에 참여하기 전에 두 번 정도 느헤미야서를 정독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서는 1년 전 교회에서 매주 금요철야예배시 강론을 한 적이 있었기에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토라사관학교에서 다시 들으니 새로운 각도에서 참으로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2시간 정도 말씀을 선포하고 20분정도 찬양을 하고 식사시간에는 조별로 배운 내용을 나눔을 계속하였는데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교육을 받을 때마다 조는 습관이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에어로빅을 하고 와서 그런지 더욱 은혜스럽게(?) 졸음이 왔습니다.
졸음이 오기에 몸을 꼬집기도 하였지만 금방 졸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수원시청 직장선교회에 지금까지 참여를 하고 있지만 한달에 한번 모이기도 힘이 드는 모습에 늘 안 된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이어져야 하는 것처럼 모든 말씀을 총체적으로 접근하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을 하였습니다. 골짜기에서 골짜기까지 양문에서 양문까지 성벽을 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로잡혀 와서 수산 궁에 있었지만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이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수일동안 울며 금식하였습니다.
나의 가정, 직장, 교회, 선교회 등에 대하여 무디어진 나의 심령에 대하여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 때 느헤미야의 “여호와 하늘의 하나님 크고 놀라우신 분이시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언약에 근거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적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시어 그를 술관원으로 시켜주시고 성벽을 재건하기 위한 모든 준비들을 시켜주셨습니다.
이러한 언약적 기도문을 암송하고 주시옵소서하는 기도 방법들도 고쳐나가렵니다.
제가 거의 매일 QT를 하고 그 내용을 올리지만 말씀에 예민하지 못하고 제대로 반응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나 자신에게 이번 사경회는 더욱더 선명한 복음에 대하여 말씀을 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말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각이 아닌 말씀이 나의 삶을 주장하도록 자신을 바꾸어나가렵니다.
우리 집 반쪽은 말씀이 너무 비판적이어서(?) 은혜스럽게 듣지를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지자적사명을 감당하려면 듣기 좋은 말로는 되지 않느냐고 이해를(?) 시켰습니다.
주님과 다주고 다 받는 언약을 체결하고자 합니다.
아직도 내가 세상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 성서한국의 주제처럼 “견고한 언약을 세움”으로 세상에서 주님이 먼저 나에게 목숨까지도 주셨으므로 이제는 내가 주님에게 반응을 하고자 합니다.
패배감과 비굴감에 싸여 있는 나 자신에게 황태자로서의 권위, 권세, 권능들을 회복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장님은 나와 동갑내기로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 것을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행동신학, 수지신학이라고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근데 수지신학이 언약신학보다 더 세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는지요? 하하하하하하
이렇게 좋은 말씀들을 듣고도 졸았던 제 자신에 대하여 송목사님께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지혜와 교제하는 자매도 만나게 되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가치관과 세계관 등의 부재로 많은 이들이 부초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만을 위하기에도 부족함이 많은 실정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은 느헤미야처럼 내가 속한 영역을 세워나가기 위하여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특히 하나님이 왕이시므로 황태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물론 그냥 거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분명한 대가 지불과 훈련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나를 가로막는 수많은 불신의 생각들을 떨쳐내고 믿음의 눈으로 현상들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