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작성자명 [윤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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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8.20
잠 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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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 밤 1시, 오늘 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저녁 10시 (한국시간 새벽 3시) 에 잠이 오지 않은 짝지에게서 전화가 와서 말씀 좀 같이 나누고는 큐티 복습하고 내일 말씀 보고 눈을 붙였는데 잠은 오지 않고,
언젠가 이재철 목사님 제네바에서 목회하실 때, 아이들, 가족 생각에 밤에 잠이 안 올 때는 장문의 편지 쓰시곤 하셨다던가 하는 글을 읽은 것 같은데, 저도 때로는 혼자 외로울 때 잠이 안 오기도 하지만, 오늘은 영적인 문제로 이 생각 저 생각 고민하다 보니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그래 일어나 사무실에 나와서, 생각 옮겨 가는 대로 나눔 올리고 나면 잠이 올 듯 합니다. 여유 만만, 길이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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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생각이 들기로는, 참 하루 하루 일과 생활이 영적으로 다 복잡하게 연관 되어 있구나, 정교한 복합전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영적으로 좋은 일에는 꼭 시험이 따르는 구나, 오늘도 그리 한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청소 용역업체 들을 불러서 요구 조건들을 알려 주고 이 번주에 오라고 그랬는데, 한 업체가 왔는데, 영 아니라, 그래서 직사포 좀 날리고 또 자세 낮추어 다독 거리고 보낸 후에, 오만인 젊은 직원에게 이야기 하기를 저 친구 아침부터 폭탄 세례 맞아서 어쩌지? 가면서 어제 밤 나쁜 꿈 꾸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투덜 댈 것 같다 고 했습니다.
몰론 현지인 직원이 위로 겸 하는 말이, 그렇게 해서 배우는 것 아니냐고 그랬습니다만
하지만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월요일 말씀을 보니 제가 바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면서 높은 자리에서 한 수 가르친다고, 의도는 좋지만, 아침부터 폭탄 세례를 퍼 부었으면서도 오히려 의기양양 했으니, 참 하나님 위에서 보시기에 가관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특히나 토요일에 휴가에서 복귀한 제 옆자리 동료, 주 안에서 마음속의 소원이 있던, 같이 말씀 볼 기회 주시라고, 그랬는데 다행히, 어제 큐티 말씀이 참 반성이 많이 되는 내용이라,
헤아릴 수 없는 왕의 마음 하며, 찌꺼기 많은 은 하며, 왕 앞에서 높은체 하는 것 하며, 서둘러 나가서 다투는 것 하며,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는 것 하며, 악평 하며,
참으로 걸리는 것이 많아서 옆에 건별로 죽 적어 놓고 반성했는데,
마침 둘이 이야기 하던 중 기회가 오길래, 오늘 아침 말씀에 이런 내용들이 있더라 하면서 보여 주니, 하는 말이 어떻게 이런 말씀 들이 2천년 도 더 된 오래 전에 있을 수 있을까 하면서 관심을 표하길래, 그래, 같이 말씀 나누어 갑시다 했더니 그대로 하자 하길래, 야 이것 감사합니다, 주님 미리 그 마음 준비해 주셨군요.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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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요일 아침 새벽에, 일요일 저녁에 이분과 나눌 말씀 준비하는데, 다른 것 아는 것 없고, 이 분, 카톨릭 초신자 수준인 것 같고, 다행히, 저에게 있는 재산 목록 하나, 목사님 마태복음 설교 정리해 놓은 것, 그래서 마태복음 1장을 다시 간단히 요약 정리 하는데, 두 번 째 설교 정리해 놓은 날이 보니 금년 2월 18일인데 그날 제 스스로 저의 기도를 적어 놓은 것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ㅇ 나지브 (정부 관리)에 대해 분노 표출한 것은 죄이다
일과 사정 모르는 것 또 관료적인 것 다 인정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나의 기준으로 여럿 앞에서 직설적으로 화 낸 것, 비즈니스의 유불리를 떠나서 죄이다
ㅇ 문실장님과 아줌마 (우리 직원들 밥해주는 조선족 아줌마)와 말씀 나누게 해 주소서
ㅇ 아닐 (사무실 청소하는 인도 청년)과 목요일에 말씀 나누게 해 주소서
ㅇ 말씀 안에서 필요한 대로 수치와 조롱 잘 받게 해 주소서
잠 26: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어쩌면 그렇게 6개월 전에도, 또 그 후에도 미련한 자가 되어서 반성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도
저 스스로의 지혜로움에 빠져서, 나의 옳음에, 나의 우월한 논리에, 나의 지식과 경험이 탁월함에 자가도취에 빠져서,
타인의 마음과 정서, 그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관심하고 얼음장인지, 그 차가운 마음에서 또 그렇게 지옥 불길이 터져 나오는지, 왜 그렇게 무정한지, 무정도 죄라고 로마서에서 그랬는데
그래서 아침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참 내 힘으로어쩔수 없구나 했는데, 오후에 깨달음 하나를 주십니다.
답답한 마음에 일도 안 되고 현지인 직원과커피 한잔 하면서, 그래도 무엇인가 말씀 관련해서 이야기는 하고 싶어서 오만이 축복이었노라, 또 이제서야 말씀이 조금 들리고 보이는 것 같다 는 등 이야기 하는데
떠오르는 생각, 이 친구, 나한테 당했다면 제일 많이 당했을, 작년 한 때, 너 다른 곳 가라, 그런 업무 태도로는 더 이상 너하고 일 못하겠다 까지 한 친구인데, 그럴 때마다 ( 분노를 표출할 때마다) 나는 여기에 ‘일하러 온 사람이다’ 일해야 되는데, 나의 사명은 일하러 온 것인데, 그것이 내 기준대로 되지 않으니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계속 이야기 해 왔는데, 그래서 이 직원은 지금은 나의 분노에 대해서는 그래도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편(착각?)인데
이제야 조금 터널 끝 가느다란 빛이 보입니다. 아니다, 나는 이 곳에 일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의 영혼을 말씀으로 살리러 온 것이다. 그리고 기회 닿는대로 내가 아는 작은 빛 한 줄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온 것이다.
일보다는 사람이다, 작년부터 제 머리에 이성으로는 들어와 있던 말.
이제야, 그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논리만 따지고 마음과 정서는 모른채 하는, 다른 사람 죽건 말건 안중에 없는 나 혼자 똑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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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오늘의 본론 입니다, 저의 죄 드러내 보여 주시는, 저는 어찌할 지 잘 모르겠는.
6개월 전의 기도, 말씀 나누게 해 달라는, 다른 사람 영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왔다고 생각한,
그리고, 두 분과 같이 말씀 나누기 시작한 날이 우연히 적어 놓은 것 보니, 3월 12일, 그리고 그 전후해서 인도인 청년과도 떠듬 영어로 나누기 시작 하였으니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하나님이 제 기도 다 들어 주셨군요
하나님,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할렐루야 정도는 입에서 나와야 되는데, 그 간절한(???) 소원을 바로 들어 주셨는데, 그런데, 오만에 와서 하나님 말씀에 붙어 있다는 나인데, 어찌 무덤덤 한 겁니다. 감동이 없는 겁니다.
왜지요.? 바로 이 것가지고 전화한 짝지하고도 나누었지만,
하나님 결국 뭡니까? 다른 분들과 말씀 나눈 것도 결국은 저 잘난 맛에, 저의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이었다는 말입니까?
일요일 새벽에 6개월 전의 그 기도 내용 적어 놓은 것 보기 전 까지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 그래,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사용해 주셔서 나 이정도 말씀 나누어 주게 된 것이야, 이 정도 수준은 된 것이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응답해 주신 기도 내용을 보고, 즉, 하나님이 나를 들어 주셨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크게 기쁘지 않은 것은,
하나님 은혜로 하게 된 것이 별로 마음에 달갑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내가 내 공로로 내 힘으로, 나의 헌신과 고생과 수고로 이 정도 했노라 한 것 같습니다.
맡습니까?
그래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저의 죄를 보여 주십시오,도데체 저의 지저분한 꾸정물 저 밑바탕 좀 보여 주십시오, 뭡니까, 사탄의 얼굴이라도 보여주십시오
그런데,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보여주었다. 너 이제 알게 되었쟎아
그러면 어떡하라구요, 그 놈을 확실히 주렁 주렁 매달아야 되는데. 발로 눌러 밟아야 되는데
뭐가 손에 잡혀야 목아지를 비#53969;든지 할 것인데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 말씀입니까?
평범한 생활 잘 해라,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큐티 열심히 하면서 말씀 보고, 니 죄, 악, 미련한 것, 잘난 것, 똑똑한 것, 멍청한 것, 니가 토한 것 또 먹고 또 토하는 개인 것, 보면서 가거라.
그런데 아직, 벌레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내가 사회에서 해 놓은 것들이 뭐 아무 것도 없지만 배설물 정도로 더럽지는 않다는 생각.
<6>
일요일 저녁에 동료와 같이 마태복음 1장 반틈 나누었습니다.
살인과 강간과 배신의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눈물 뿌리며 나아 올 때에 생명 낳는 예수님 족보에 넣어 주시더라는 이야기
내 비록 엉터리 이지만 그래도 무명한 9명이더라도 그 자리 말씀 가지고 꾹 지키고 가다보면 먼 후대에라도 예수님 나오신다는 이야기
인간의 의라는 것이 결국은 저 혼자 의로운 사람되고 사랑한다는 사람 죽이는 짓 하게 된다는 것
그러면서, 일 보다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이제는 마음으로 들어온 것 같다 고 그랬는데
이 분이 하는 말 한 마디가 또 위로가 됩니다.
휴가 가기 전 ‘ 내 당신 맘 다 알아’ 하고 내 손 꼭 잡아 주었던 그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위로
이번에는, 그래, 그래도 당장 되겠어? 시간이 걸릴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
저의 분 내는 것을 옆에서 너무 많이 보고 뭐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분
그런데 묘하네요, 위로가 됩니다.
<7>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 공정하신 하나님,
아 이래서 처음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 될 수도 있겠구나.
나의 열심으로 섬긴다고 하지만, 그 안에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없으면, 너의 공로만 쌓고,
그 분들께만 도움이 되고는, 너는 너의 사랑 없음으로 스스로 버림 받을 수도 있겠구나.
<8>
하나님, 아프가니스탄의 어린 양들에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 주시기를,
그 목자의 소리로 인하여, 이 밤 하룻밤도 평안한 잠자리가 되기를
순교하신 배목사님이 부럽다고 하셨다는 수요일 예배 선교사님 이야기,
몸으로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저 들 밖의 한 밤중의 양들이 역시 부럽다고 나누셨던
어떤 분의 마음과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