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9:1-8)
10년전 학회 참석차 파리에 온 한 속좁은 교수가 샹젤리제 거리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명품가방이 싼데 하나 살까?’ ‘아니, 나 그런 것 안 좋아하잖아. 절대 사지마’ ‘정말? 알았어~’ 그리고 옆의 조금 덜 속좁은 어린 교수에게 물었더니, ‘글쎄요... 그래도 불안한데요, 전화까지 했는데...’ 그 말에 용기를 내어 제일 작은 명품 백 하나를 사들고 왔습니다. 전 그날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아내의 진심’을... ‘여자의 속마음’을.... 그리고 전 며칠간 왕대접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외국 나갈 때마다 싸구려 부로찌로 왕이 될 기회를 노립니다.
며칠전 스승의 날 손에 여러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에 왔습니다. 아내와 딸이 입맛을 다지며 뒤졌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습니다 (?). 그런데 모든 카드를 읽어보던 딸이 한마디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영혼 없는 카드를 적지. 내가 적은 카드로 우리 선생님은 눈시울이 적던데...’ 그러고 보니, 카드의 글들이 길지 않습니다. 한두개 빼고는... 저도 이 카드만 기억에 남습니다.
중이염 수술후 다 나아야 할 기간을 지나서 2-3달을 더 고생하신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당황을 하면서, 특진료도 안받고, 외래 시간과 상관없이 성심껏 치료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 같으면 화를 내실만도 한데, 한번도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치료 마지막날, 이 아주머니가 손수 담근 된장과 깨를 한보따리 가져오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선물을 해야 할 판인데,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오히려 받았습니다. 참 먹먹했었습니다.
6년전 1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날 때, 개업을 하시고 계신 저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님께 인사차 식사를 접대해드렸습니다. 마침 스승의 날도 되어서 선물도 드리고, 부부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는데 선생님께서 카드와 봉투하나를 내미셨습니다. 집에 가서 열어보니, 잘다녀 오라는 격려의 글과 1000불이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이번 스승의 날, 제가 점심대접을 해드린 분이 바로 이 스승이십니다.
히스기야의 자랑은 새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저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왕인 히스기야가 이렇게 간과 쓸개 모두를 내 주었을까(2)? 그 비밀이 궁금합니다 (1). 첫째, 예물, 둘째, 영혼이 담긴 글, 셋째, 예상치 않은 때의 선물, 넷째, 받아야 할 윗사람이 오히려 아랫사람에게 선물하였기 때문..... 이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의 마음을 사려면 이렇게 해야 겠습니다. 아내, 딸, 목원, 과원... 그리고 전도대상자.
누가 이렇게 마음을 빼앗는 ‘글과 예물’을 가져오면 잘 분별해야 겠습니다. 간과 쓸개를 내어주지 않도록.
그런데 오늘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특히 최근 2년반동안 이렇게 저에게 해주신 분이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김양재 목사님이십니다.
적용> 요즘 교회에 나오지 않은 후배에게 글과 큐티인 선물을 등기로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