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금요일
제목: 하나님 나라
이사야 33:1-24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하나님을 알고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도 여전히 학대하고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이는 내가 학대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심판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시는 말씀에 비춰보면서도 나를 보지 못하는 나를 주님의 선포하심으로, 이제 일어나 이제 지극히 높이며, 주께서 친히 행하시는 심판에 대해 듣고 권능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곳, 아름다운 그 곳, 가운데에서 왕이신 주님을 보며 주가 통치하시는 광활한 땅을 보게 하실 주님, 안정된 처소,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 거기에서 위엄 중에 함께 계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 재판장이시고 율법을 세우신 우리의 왕! 주님이 친히 구원하실 것이다. 병들지 않는 곳, 사죄함을 받은 백성으로 그곳, 하나님 나라에서 살리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모함, 먼저 내 안에 그리고 내가 거하는 가정과 교회에 내가 사는 직장과 공동체에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고 주께서 친히 통치하시기를 소원하고 기도했다. 천국이 이곳에 임하기를 기도했다. 주님의 통치, 그 권위에 대한 나의 순종은 당연함이었다. 그런데 실상에서 주님이 오시게 하는 데 걸림돌과 방해꾼이 바로 나라는 걸, 우리들 공동체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주님의 통치를 사모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적용이 없는 내 안은 황폐하고 슬퍼하고 메마른 땅이었다.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하며 내 호흡이 불이 되어 삼키고 스스로 살라지는 인생이었다. 주님이 오심을 막는 장본인이 나였다.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가 없으니 앗수르의 포악이 내 모습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가 없으니 찌르는 칼이 되어 싸우고 또 싸우는 내 모습이다. 남자들도 잘도 울더라. 자신의 죄가 보이면 감성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애통도 잘 하더라. 그게 내 맘속 포악이었다.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나? 그게 내 억울함의 주제가였다. 나는 속일지언정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하고 나는 학대를 당하지 않고도 학대를 당연하게 하는 내 모습, 나는 앗수르였다. 남편의 거짓에 남편의 음란에 함께 동참했으면서도 나는 피해자인 양 슬프기만 하고, 나는 학대받지 않았으면서 아들들에게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학대를 일삼는 그런 아내와 엄마가 나다. 상대에게서 수준 높은 적용만 요구했지 나의 수준을 높이려는 내 적용은 하지 못하는 나다.
그런 내게 하나님이 건강한 공동체에 속하는 복을 주셨다.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함을 맛보게 하신다. 여러 지체들을 통해 삶으로 보여주는 적용을 통해 나의 참수준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신다. 그리고 나의 악과 죄가 드러나게 하신다. 환경 가운데 말씀하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조차 놓쳐서는 안 됨을 알려주신다. 내가 쌓아야 할 보배가 주를 경외함임을 친히 가르쳐주신다. 나를 양육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족하고 풍성하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다. 내 죄를 보게 하는 지금 이 곳이 하나님 나라다.
가장 좋은 환경을 언제나 허락하시는 나의 주님, 재앙도 심판도 구원이 되게 하시는 나의 주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남편과 아들 앞에 나의 악을 사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