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오늘 말씀에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한다” 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어제 수요 예배 때 찔림을 받고 회개한 부분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어제 수요예배 때 제가 근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을 신뢰함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바로 율법아래에 있으면서 육으로 심고 영으로 거두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 말미에 목사님께서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윤 아무개씨 사건을 말씀하실 때 정말 놀랐습니다. 사실 저는 윤모씨의 사건을 신문과 방송에서 접하면서, 애초부터 윤모씨보다 교포 피해자의 진술에 심정적으로 더 신빙성 있고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윤모씨가 한국에 급거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하는 데에도 전혀 그 분의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 같지가 않아서 마음속으로 ‘그냥 실수 했으면 실수했다고 인정하지… 떳떳하게 책임지면 더 모양새가 좋을텐데…’ 하고 은근히 마음속에 그를 향한 비난 아닌 비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으로 이 사람도 예수 믿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지만, 그의 입장이 되지 않고 그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그의 영혼구원을 걱정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한 자가 바로 저라는 사실에 이것이 나의 현주소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그보다 더한 수치와 정죄를 받아도 할 말 없는 죄를 지은 자인데, 제 안에는 또 다른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애초부터 육으로 심고 육으로 거두는 자이다 보니, 제 스스로 저를 속이고 영으로 심고 영으로 거두는 자로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예배 중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다름아닌, 목사님이 죄인을 향한 생각과 그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목사님께는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는 중요치 않아 보였습니다. 다만 거기에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이 있는가 없는가에만 온통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말을 의심의 눈초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는 당신의 영혼을 믿습니다.’ 하는 입장이었고 그의 말이 사실이고 아니고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주는 것이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동안 제가 왜 온유함이 없는지 그 근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누구를 대하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믿어주는 사람이 아닌, 근본적으로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에 대한 불신은 결국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핏값으로 주고 사신 한 영혼은 그리스도가 오기까지 신뢰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 회사와 가정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연습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