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작성자명 [윤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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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8.10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이 곳에서 주님 주신 기쁨 가운데 하나는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작은 수산회사에서 일하시는데, 나이 적은 사장의 홀대에 그냥 웃으시면서 주말도 없이 일하시는 분입니다.
금요일 아침에는 차가 아직 없기에 제가 모시러 가서 같이 교회 가는데,
오늘 갔더니 사장 눈치 때문에 못 가겠답니다. 그래서 이 분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이 분의 지금 세상에서의 왕으로 있는 사장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기를 기도해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마태복음 설교 들을 때, 이 세상 삶, 유람선 타고 가는 것이 나니고 전투함 타고 가는 것이라시면서, 교회 예배 보러 가는 것도, 아이들 교회 한 번 보내는 것도 다 영적인 전투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또 오늘 예배 대표 기도시간에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태를 언급하면서 왕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다 (King’s mind is in His heart) 고 하여서
오늘 말씀 나누어 올리는 모티브가 되어서 이 분과의 말씀 나누는 것에 대하여 묵상해 보면서 저의 지난 주의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고자 합니다.
지난 주, 이 분 때문에 저의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지난 3월부터 이 분과 또 한 분과 셋이서 일주일에 1, 2번씩 말씀 나누어 가고 있는데,
지난 주, 이 분 일 때문에 어긋나고, 다른 분 장 보러 가야 되어서 어긋나고,
두 분 모두 이제 처음으로 말씀을 듣기 시작한 분 들,
믿음의 연륜이나, 생활 여건 (중소 기업 근무, 차 없이 장 보는 어려움 등) 으로 보면은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말씀 나눌 약속이 깨지는 것에 답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또 약속을 새롭게 한 날 저녁,
제가 그냥 말씀 나누러 갈까 하다가, 저도 두 번이나 모이자고 하면서 오늘로 연기가 되었는데, 혹시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 그 분들 마음 (열심)을 보고 싶기도 하고 -
또 제 마음이 지치기도 하여서 (두 번이나 합시다 합시다 아쉬운 소리(?)를 했는데),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결국 전화도 안 오고 해서, 그날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운 채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만나서 일주일 만에 다시 말씀 나누는데, 그날 밤에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잠 21: 2 - 4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제가 스스로 모세의 자리에 올라 가르치는 자가 되어서, 눈이 높아 지고 마음이 교만하여 져서 당신들 내가 시간 내고 열심내서 이 정도 하면 어느 정도 따라 온다는 반응은 보여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고
내 스스로 하나님의 정직이 있는 양 저의 행위를 스스로 정직하다 인자하다 생각하였지만,
마음을 감찰하시는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오늘 낮의 나눔을 통하여 그날 밤 저의 죄,
나누어 주는 자가 ㅁ너저 나눔 받는 자의 처지를 배려하면서, 겸손히, 눈높이 낮추어서 먼저 전화하지 못하고, 그 분들의 마음을 떠 보면서 기다린 것,
그 분들과의 나눔이 대단한 것이라도 하는 양, 주님 말씀 나누는 귀한 일에 한 자리 끼어 주심에 그냥 기쁨과 감사로 대하지 못하고,
주님의 어린 양들인 그 분들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품은 것.
위와 같은 죄를 보게 하십니다.
제사 (예배)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데
-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를 멸시치 않으면서 껴 안는 것,
제가 말씀에 대해서는 한 발 먼저 아는 자로서 말씀에 대해 가난한 저들의 영혼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저의 교만과 게으름에 빠져서
저 분들에 대한 지금 이 시점의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것 (어르고 달래서라도 말씀 나누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잠 20: 6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저의 인자 (말씀 나누네 하는)만 자랑하였지 결코 진정으로 충성된 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분, 시골 큰 형 같이 그저 사람 좋은 분, 지금 또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작은 수산회사 사장의 부당한 처우와 인간적인 대접 없음에 그만 두고 나와서 개인 사업을 할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돈과 인간적인 대접이 쌍곡선으로 얽혀서 갈등하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가 옆에서 듣고 보기에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적인 선악 관점이나 인격적인 관점 에서 보면은 오히려 명료한데, 모든 문제 영적인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은 어렵습니다.
우리들교회 목자님 한 분이라도 옆에 계시면, 시원한 처방이라도 주실 수 있으련만, 저의 수준은 이야기 들어 주고 그 앞 길 하나님 인도해 주시라는 기도 해 드리는 수준 밖에 안 되니…
이 분, 선친이 스님으로부터 한글과 불경을 배워서 아침마다 불경 읽는 집에서 성장하고, 또 이 곳에서 사기 당해 사법기관으로부터 고난 받을 때, 부처에게, 이 번 일 해결해 주면 절 한 채 지어 헌당하겠다는 기원을 했었다는이야기도 얼마 전에야 저에게 하는데
지난 번 한국 가서 목사님 주재로 하였던 신앙고백은, 등 떠 밀려서든, 얼결에든 하기는 했는데, 그 때 목사님께 위와 같은 마음의 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 었는데 못했었다는.
그래서 이 분에 대한 첫째 기도 제목이 하나님 안에서 그 앞길 열어 주시라는 것에서
거짓 우상의 나쁜 영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오늘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 이 분의 믿음이 나중된 자가 처음 되어 있을 그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허락하실 그 때까지, 말씀 같이 나누고 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 저에게 또 은혜 주시사, 저의 죄와 못난 점 깨닫게 하시고, 배운 말씀 나누면서 덜 잊어 먹게 하시는 것에 그냥 감사하자.
이 순간, 아프가니스탄의 어린 양들로 인하여 하나님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그들로 인하여 아프가니스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그 어린 양들과 어린 저에게도, 오늘, 그리고 영원히,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