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율법
작성자명 [김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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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3.05.11
갈5;1
제가 소학교 다닐 적에는 국어시간에 반대말과 비슷한 말을 배웠습니다.
이 때문에 동아 전과 같은 참고서가 없으면 숙제를 할 수가 없어서
헤지고 낡아빠진 전과를 한동네 사는 형이나 누나에게
50원 정도를 주고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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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의 반대말은 '싫다'가 맞나요. '나쁘다'가 맞나요?
'율법과 성령'은 Delicate하고 무거운 주제인데도
사고가 단순한 제게 십 년 넘게 의문을 갖도록 해서
신학적으로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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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까지 유치한 수준이지만 말입니다.
특별히 최 갑종 교수의 "율법과 성령"이란 책에 언급된
대부분의 사상들에 동의합니다.
율법은 '구원의 수단'으로 주어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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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거룩한 신분의 유지를 위해 '삶의 수단'으로 주어졌습니까,
율법과 성령은 정말로 상대적 개념입니까,
먼저 “율법과 성령이 다른가,”에 대한 제 견해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그동안 바울이 다소 부정적으로 다루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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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5.6장에 와서는 '사랑과 그리스도의 법'으로 바울복음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성령과 제휴관계에 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성령의 주된 사역은 성도인 내게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해서 그리스도의 법인 율법을 성취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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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도의 신앙생활 가운데 율법과 성령의 밀접한 제휴관계는
성령을 '아들의 영(4:6)'으로 부른다거나 율법을 '그리스도의 법(6:2)으로
부르는 것에 기인합니다.
결국 율법의 목표와 성령의 목표가 같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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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처음부터 율법은 구원이 수단이 아니라 언약백성이기에
지켜야하는 삶의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성도의 존재나 신분의 문제와 관련된 성령취급에서는
수동성만을 언급한 듯이 보이나 성도의 삶의 문제와 관련된 성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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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에서는 수없이 성도의 능동성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까,
갈라디아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자유로운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례를 비롯한 각종 율법 의식들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넘어가게 된 것은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박해를 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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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서 이었습니다. 만약 정말 그런 식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는다면 율법 전체를 다 지켜야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3)
물론, 율법 지키기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안 되는 일이기에
육체의 힘으로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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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 이 일을 시도한다면 은혜를 헛되게 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4)
이제 참 자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지체를 사랑하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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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의 종이 되게 한답니다.(13)나를 근거로 하던 예수를
근거로 삼든 착한 사람이 되면 된다는 식의 말은 위험천만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면서는 예수가 주인인 그 나라에 절대로
편입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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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매일매일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말씀(율법)이 이루어진다고,(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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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령에 의해 새로운 존재와 신분이 결정되고 새 삶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령이 내 삶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닌 줄로 압니다.
지금까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아에서 놓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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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오주님, 제가 자유를 방종으로 사용하지 않기 위하여 욕심을 버리고
다른 성도의 짐을 같이 지면서 사랑의 법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옵소서.
기꺼이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옵소서.
2013.5.11.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