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목요일
제목: 열심
갈라디아서 1:11-2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열심’은 선한 줄 알았다. 방향이 문제인 걸.... 방향이 잘못 되었다면 그 열심은 더 악할 뿐인데.... 그러나 그런 잘못된 열성, 열심, 그 성품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내가 열정이 있다. 그래서 잘 빠진다. 깊이 빠진다. 기도에 빠져서, 찬양에 빠져서, 말씀에 빠져서... 내 환경 가운데서 열심을 내며 좇았던 것 같다. 연수에 빠져서, 사람에 빠져서, 치유에 빠져서 또 열심을 내며 좇았다. 우리들 교회에 온 것도 그런 열정있는 내 성격이 사용된 일면도 있다. 또한 나는 남편에 대한 열심, 남편으로부터 채우고 싶은 사랑에 대한 열심이 있었다. 남편이 항상 우선이었다. 남편이 내게 너무나 밀착되어 있다. 남편 뒤를 항상 졸졸 따라 다닌다. 남편에게 안테나가 세워져있다. 그래서 외롭고 슬프고 쓸쓸하다.
수요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내 외로움이 감사가 되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면서도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동안, 남편과 있는 차안에서 나의 노래는 또 외로움이었고 내 연민이었고 내 슬픔이었다. 말로만 하고 삶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사랑한다는 말, 그럴 거면 앞으로는 하지 말라. 나를 보고 더 이상 당신의 아내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말하지 말라. 당신은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다르다. 말과 생각으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사랑하는 게 아내라고 하지만 당신의 행동으로 내게 전달되기는 끊임없이 내가 중요하고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더 상처받는다.....중얼중얼, 중언부언 또 쏟아놓았다.
그런데 그 외로움의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시다. 나보다 더 철저히 소외받고 더 깊은 외로움을 경험하신 우리 주님이 계시다. 그래서 내 외로움은 감사다. 그래서 남편에게 또 감사다. 아침에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데... 정말 고맙다. 비록, 가슴은 아프고 마음이 다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찾게 하고 또 찾게 하는 남편이 고맙다. 그렇게 수고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 악한 내 열심을 통해서도 주님이 일하심을 보오니 감사합니다. 분별함으로 구원을 이루는데 내 성품이 사용되게 하소서
외로움의 끝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남편에게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현하겠습니다.
동료와 호흡과 보조를 맞춰 나를 표현하며 일하겠습니다.
5월 3일 금요일
제목: 외모
갈라디아서 2:1-10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 교회에 가서 내 귀에 들렸던 말씀이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이었다. 지금은 그말 앞에 더 많이 떨리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으로 들리지만 그때는 위로였다. 그래서 내 모습이 하나님께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해석될까? 염려되지 않고 “하나님, 아시지요?” 한 마디면 다 되었다. “하나님, 아시잖아요...” 그 말씀을 드릴 수 있다는 게 참 위로가 되었다. 내가 말로 다 표현 못해도, 혹 내가 잘못 인식하고 아뢰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다 아시니까. 나를 다 아시는 분이시니까... 그래서 자유로웠다. 사람 앞에서는 조심해야 하고 제대로 잘 표현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외모를 보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또 왜곡되고 오해받을 수도 있을 수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나와 남을 배려해야 하고 살펴야 하지만... 하나님은 괜찮았다. 혹시 내가 잘 못 인식하고 있어서 내가 나에게 속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보다 먼저 아시고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고 나를 설득해주실 테니까... 안심이 되고 편안했다. 자유...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함을 처음 느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많이 의식하고 살았음이 이제야 보인다. 그랬기 때문에 그때, 자유함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에게 가장 큰 변화라면 자유함이다. 죄로부터, 나의 악과 가증으로부터, 또 의식과 무의식으로부터 나를 누르고 살피게 했던 시선들.. 그 모든 것에서 자유했다. 신발을 벗고 거리를 다녀도, 울고 다녀도, 비를 맞고 다녀도, 머리를 뽀글이로 폭탄처럼 하고 다녀도, 흰색 스타킹을 신고 다녀도... 수업을 빼먹고 강변에 혼자 앉아있다 와도, 숙제 기한이 다가와도.... 괜찮았다. 다 괜찮았다. 그런 자유함은 깊은 호흡으로 혈액을 따라 온 몸 구석구석으로 공급되어져 시원했다. 평안을 선물했다.
오늘 다시 살피니, 내가 열등감이 참 많았음을, 또 지금도 열등감이 많음을 알게 하신다.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내가 보일까 하는 부분에서 자유로운 것 같으면서도 나의 골수에서는 여전히 깊이 의식하고 있다. 또 내 인생이 슬픈 게 결국은 그런 비교에서 나오는 것 같다. 외모에 열등감... 지금은 “ 선생님, 제가 자존감이 낮아서 지금 제가 한 말에 저를 인정해주시지 않으면 상처받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서 함께 웃게 하지만 나는 자존감도 낮다. 그런데 이상하다. 검사에서는 높게 나오니... 그것도 나의 가증함이 작용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사건에서도 내가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더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게 있는 것 같고, 좌중 앞에 분위기 메이커로 여러 상대들을 살피며 업시키는 것 역시, 나의 열등감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열등감은 내 삶의 에너지고 동력인 것 같다.
나의 열등감.... 안 예쁘다. 쭉쭉 빵빵하지 않다. 짜리몽땅하고 굵다. 얼굴이 크다. 선이 가늘지 않다.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하다. 분별력이 없다. 손이 거칠다. 발목이 굵다. 늙었다. 동안이 아니다. 이제는 시력도 떨어져 안경도 쓴다. 잠이 많다. 살림을 못한다. 일머리가 없다. 계획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이다. 돈을 규모있게 못 쓴다. 감정도 돈도 헤푸다. 잘 빠진다. 잘 삐친다. 변덕스럽다. 시끄럽다. 정리를 못한다. 사랑에 목을 맨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 이쑤시개로 찌르고 싶어한다. 집요한 면이 있다. 완전 길맹에 길치다. 새로운 일이 두렵다. 음악적인 감각이 떨어진다. 옷을 잘 못 고른다. 화장을 못한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팔자주름이 있다. 수리력이 떨어진다. 숫자에도 약하다. 기계도 무척 싫어한다. 새로운 기능이 약하다. 글씨가 예쁘지 않다. 못하는 게 너~~~~무 많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면서도 내 안에서는 자꾸 그 반대를 끊임없이 외친다. ‘괜찮아, 이건 하잖아? 괜찮아, 그래서 이렇게 되었잖아? 괜찮아, 괜찮아...’ 그게 내가 살아온 길이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 많았기 때문에 그걸 보지 않으려는 긍정, 끊임없는 긍정.... 그러다보니 유쾌함과 쾌활함으로 포장된 깊은 우울이 자리한 게 아닌지.... 나의 열등감은 남편 앞에서 드러난다. 슬프고 우울하고 서글프고 서럽고, 속상하고 가슴 아프고 괴롭고 비참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찌그러지고 위축되고..... 끊임없는 사탄의 참소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존감이 살아난다. 그럼에도 내가 너를 사랑하잖아. 그럼에도 내가 너를 위해 죽었잖아.... 하나님 앞에서 살아났다가 다시 남편 앞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었다가 다시 찌그러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존감이 생겼다가 남편 앞에서는 자존감이 없어진다. 나는 남편이 세상이다. 세상에서 패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고 세상에 나가서 패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고....
세상이 남편이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된다. 그래서 기쁘다. 아~ 내게 남편이 세상이었구나. 끊임없이 세상에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고 싶어하는 나,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고 남편이 전부이고 싶어하는 나, 내가 세상을 좋아하는 줄 처음 인식한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너무나 좋아한다.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옮겨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이기고 싶어한다. 이제야 내 악이 보인다. 끊임없이 세상과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음란을 행했던 나의 죄가 보인다. 말로는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라고, 주님이 전부라고 그렇게 하면서도 내 안에서는 세상이 상급이고 세상이 전부였다. 남편이 전부였다. 오~ 주님! 나를 용서하소서!!
♡ 외모를 취했던 나의 악, 내 기준과 내 가치관에서 시작된 나의 열등감, 세상에서 시작된 나의 열등감의 근원을 보게 하신 걸 감사합니다. 나의 악과 죄를 용서하소서..하나님과 남편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던 나의 음란을 용서하소서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을 더 갖겠습니다. 목장 예배 전 기도 시간을 갖고 회개하겠습니다.
동료에게 가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그 입장을 잘 살피며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