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시각과 편협한 귀로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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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8.08
2007-08-08 잠언 20:1-15 ‘왜곡된 시각과 편협한 귀로’
과음의 죄가 너무 무거워 아버지께 매 맞기를 자청하며
말씀을 펴니 첫 절부터 가슴을 후벼 팝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지만 또 선포하라시니 뻔뻔히 결단합니다.
‘분별하여 먹겠습니다. 지체를 시험 들게 하지 않겠습니다.’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
지극히 평범해서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신체 부위마다 창조주가 정해주신 사명이 있겠지만
듣는 귀와 보는 눈이 다른 기관에 비해 더 중요한 이유는
듣고 보는 일로부터 사고와 행동이 시작되기 때문일 겁니다.
하드가 아무리 빵빵해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아름다운 육체도 영혼이 고결하지 않으면 고깃덩이에 불과합니다.
태어나서 2년 만에 빛과 소리를 잃은 헬렌켈러는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값진 것이라도 값없이 받으면 귀중함을 모릅니다.
구속의 은혜, 말씀의 진리도 보고 듣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게 믿음이니
잘 들어야,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보는 일에 사용하라고 귀와 눈을 주셨는데
나는 육신의 쾌락을 위해, 남을 정죄하기 위해, 증거로 남기기 위해
아버지께서 주신 귀와 눈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시각과 편협한 귀로 살아온 결과
아직도 말씀 안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구원의 길잡이는커녕, 내 구원의 길 걸어가기도 힘이 듭니다.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 못한 후회로 맘이 무거웠던 지난 주를 보내고
또 한 주 시작을 공동체 나눔으로 은혜롭게 열었는데
세상에 잠깐 나가 본 어제,
되었다함이 없는 내 모습에 절망이 밀려오지만
값없이 주는 은혜로 자녀의 자리를 지키게 해주시니
여전한 방식으로 아버지께 아뢰며
힘을 얻어 앞만 보고 나아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