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28
성령 론은 한국교회에 아직도 민감 사안 입니다.
좌로 치우치면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자유주의로 흘러가게 되고,
우로 치우치면 극단의 신비주의로 치닫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그동안 성령을 이성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
해석하려다보니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한하였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저는 방언, 신유, 입신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20세기 성령 론은 신비주의적 요소를 강조하는 오순절 계통과
-
이와는 반대로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합니다.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열심이 있고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이르는 경우가 많으나 교회의 질서를
-
어지럽히고 교만해지는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반면에 이성과 객관 적 경험을 앞세우는 교회는 아무래도
성령의 역사를 소홀히 하기 쉬운 약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폐일언하고 신앙이라는 것이 신비적인 요소를 빼버릴 수는 없습니다.
-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 육체 안에 머무신다는 것
자체가 신비이며, 이러한 비밀스런 연합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결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동안 성령세례가 단 회적이냐 반복적이 나의 문제에 있어서
제 경우는 리차드 B 개핀이나 존 스타트의 입장에 찬성하고
단회적인 객관적 중심적 사건으로 보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언이 단수로 되어 있다는 것(눅3:16,막1:8,요1:33)과
-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세례를 지칭하는 "밥티스마 "가 이방인
가정과 고넬뇨 사건 등 특정 구절 외에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 서택 목사의 요엘서(홍성사,105p)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내 성령 론의 범주를 넓혀 보고자 합니다.
-
먼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성령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고 하신 요엘서의 약속을 오순절 날
성취하셨다는 데에 대하여서는 이견이 없지만 이러한
성령의 부으심은 단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교회사에
-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 아닙니까,
종교 개혁 시대에도, 청도 교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2:28.29"
-
나에게 임하던 재앙을 거두시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세례가 단회 적이든 반복적이든
제가 이해한 만큼이라도 성령의 터치를
-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않게 하옵소서.
날마다 내게 충만히 임하시는 성령을 붙들고
죽은 나무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2013.4.24.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