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께 복음을
아침에 오늘 큐티말씀을 읽었더니 가족들의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우선 이번에 대학생이 된 큰 아들의 얼굴이 노래집니다. 큰 아들은 오늘부터 중간고사기간입니다. 합격 후 해방감에 도취되어 놀다보니 어느덧 시험 때가 되어 망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은 다음 주부터 시험인데 경고의 말씀이라는 형을 보더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네 하며 표정이 심각해집니다. 초등학생인 막내 딸은 슬픈 일이 뭐냐고 했더니 소풍이니 견학이 다 끝나서 이젠 재미있는 일이 없다며 샐쭉합니다. 아내는 최근 바꾼 책장을 교환했는데 교환한 것도 이상해서 오전에 직원이 오기로 했는데 걱정이라고 기도해야 겠답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이렇게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해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말씀이 각자의 삶에 생명력 있고 살아 숨쉬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자로 늙은 자들아 라는 말에 저희 장인어른을 떠 올렸습니다. 평생 교사로 지내시다 정년을 하시고 팔순이 되신 장인어른은 첫 사위인 저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당신 인생은 순탄하지 않아 부모 형제 친척과 멀어지셨고, 강직한 성격 탓에 친구들도 별로 없으십니다. 게다가 지금은 같이 있는 장모님과 처제가 몸이 아프고, 따로 사는 처남과 처남댁도 투병 중이라 집안 일도 거의 도맡아 하셔야 합니다. 같은 서울이라도 반대쪽에 떨어져 있는 제 아내는 부모님 생각만 하면 슬퍼집니다. 얼마 전 아내와 저는 장모님의 암 수술을 계기로 함께 교회 다니시길 권했지만 지금도 완고하게 버티고 계십니다.
장인어른의 아버지와 장인어른, 그리고 처남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오직 이 집안에 복음이 들어와서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날이 가까워졌음에도 애통함으로 애곡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제일 먼저 전도해야 할 내 옆의 사람들에게조차 말씀을 전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장인어른이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하는’ 구원의 족보를 쓸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적용 :
오늘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려서 믿음생활을 권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