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1:1-20)
어젯밤 늦게 딸이 잠자러 들어가는 저를 껴안아 주었습니다. ‘아빠 감동이야’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그래? 그랬구나. 잘 자라’. 식탁위에 있던 큐티인 5-6월호에 실린 아빠의 큐티를 보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외국학회에 갈 때 비행기 안에서 종종 유언장을 썼었습니다. 아내와 딸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어머니의 큐티노트를 버렸다고 우시는 모습을 본 이후로는, 저의 유언장은 큐티인 노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빼먹기 어려웠습니다. 진심을 담아야 했고, 눈물을 담아야 했고, 슬픔을 담아야 했고, 우리 딸이 지겹지 않도록 웃음을 담아야 했습니다. 저의 삶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 딸이 아빠의 짧은 글 속에 아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았나 봅니다.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3)’.
나의 딸이, 딸의 딸이, 딸의 딸의 딸이 저의 글을 읽으며, 옆의 성경말씀을 묵상할 것을 생각하니 흐믓합니다.
그런데 오늘 자녀에게 전해야 할 말이 슬픈 소식이랍니다. 슬픈 소식은 과거로 족한데 오늘 있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어제 찾아뵌 편찮으신 어머니가 더 안좋아지시려나, 신청한 정부연구비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오려나, 혹시 나의 환자의 상태가 안좋아지려나, 나의 말의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려나, 목장식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려나,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하려나....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할 오늘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마지막으로 남길 오늘의 유언장이 슬픈 소식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적용> 하루 종일 나의 뱉는 말을 조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