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금요일
제목: 약한 그때에
고린도후서 12:1-13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약한 것들을 자랑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기뻐한다고 하는데, 나는 슬픔 가운데 함께 머물지 못함에 슬프다. 공감받지 못함이 서럽고 멀리 있음에 외롭다. 약한 그때 그리스도를 묵상하지 못하고 내 슬픔에 빠진다.
“ 밥 먹으러 갈래”라는 남편의 말에 가슴이 싸아~하며 아프고 눈물이 핑~ 돈다. 왜 그랬을까? 서러움이다. 서러움이 밀려온 것 같다. 그런 데이트 신청에 감격하면서도 혹독한 값을 치루고 듣는 말이라는 생각이 함께였기 때문 같다.
“가슴이 아파”라는 말에 “나 배고파”하는 동문서답같은 퉁명스러움, 거리감... 나의 슬픔과는 항상 멀찍이 떨어져있는 남편, 그래서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살짝 감사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함께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섭섭하다. 객관화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면 또, 아니고 또, 아니고... 반복이 된다. 나는 언제쯤이나 그런 남편의 모습을 인정하고 용납하며 아무렇지도 않을까? 남편이 평생 바뀌지 않을 것처럼, 나 역시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슬프지만 감사하다. 그런 말이라도 건네주니까.
♡나의 약함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기뻐하는 신앙 되게 해주세요.
남편의 모습 그대로 수용하게 해주세요.
4월 20일 토요일
제목: 두려움
고린도후서 12:14-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곡우다. 농사 모임에서 들었다. 곡우의 비! 씨앗을 뿌리며 실천하는 적은 사람들의 힘, 무섭다. 대단하다.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 그렇게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바꿔가고 변해가게 한다. 비로소 내가 보인다. 갑자기 무거워진다. 실천보다 말이 무성하다. 안 되는 상황에서도 모색하기보다 내 환경을 합리화하는 나다. 텃밭이 없어서....고구마를 심고 나면 남는 땅이 없으니까... 그 생각이 갑자기 부끄럽고 민망하다. 뜻이 없었던 거다. 의지가 없었던 거다.
두렵다. 짙은 나의 우울감, 슬프다. 슬픔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회개가 안 된다. 내 죄와 악보다 상대 때문에.... 라는 나의 합리화가 또 시작된다. 싫다. 싫긴 뭐가 싫어! 슬프다. 슬프긴 뭐가 슬퍼! 외롭다. 외롭긴 뭐가 외로워! 나의 거울에서는 이런 소리가 난다. 그렇지만 싫고, 슬프고. 외로운 건 사실이다. 나의 느낌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의 거울인 남편에게서는 부정의 소리만 난다. 이제 나도 무감각 해지려고는 하지만... 그게 안 된다. 나는 두렵다. 침울의 늪에 빠진 것 같다. 빠져나올 의지와 뜻이 없는 내가 두렵다. 환경에 합리화하는 내가 보이니까 두렵다. 내 슬픔의 이유를 남편에게 두는 내가 두렵다.
♡ 침울한 나, 합리화하는 나, 두려움 가운데 있는 나를 보고 주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