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고후 11:16-20)
바울은 어리석은 자는 육신을 따라 자랑하고 지혜로운 자는 주를 따라 말한다고 합니다.
저는 육신을 따라 말하고 행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영적으로 극심하게 방황하다, 4년 전 우리들 교회를 만나 신앙의 방황이 끝났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인생의 방황이 끝났다는 것이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방황하는 사람에게, 우리들 교회를 중매하고 주님을 중매하는 것이 제 남은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받은 그 은혜로 다른 사람을 살리라고 직분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동체의 큰 근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제 안에 주를 따라 갈 말씀이 없어서 여전히 육신을 따라 말하고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따라 말하고 섬긴다고 했지만, 큐티로 제 안에 말씀을 채우지 않고 육신을 따라 직분을 감당했기에, 나는 지혜롭고 너는 어리석다고 하면서 성도와 교회를 판단하고 지적 질해서 상처를 주었습니다. 제가 어떤 죄가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지혜롭거나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15억 빚으로 내리치셨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육신을 따라 말하고 행하여서 주님의 큰 근심거리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질기고 가망 없는 제 자신이 밉고 싫어서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도 육신을 따라 말하고 행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또 그 길을 갑니다. 나이 60이 되어서, 이렇게도 되었다함이 없는 형편없는 저의 실체를 바라보며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을 인생이었는데, 감사한 것은, 정말 감사한 것은 제가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깨우쳐주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근심어린 마음으로 수요예배 안내를 서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사랑의 매로 어깨를 한 대 때리시고, 육신에 따라 행하지 말고 큐티를 제대로 하라고 권면해주셨습니다.
돌아서서 한 없이 저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버리셔도 할 말 없는 인간인데, 연약한 제가 상처받아 낙심할 까봐 근심하는 저를 다시 부르셔서 사랑과 온유와 관용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처음 우리들 교회에 와서 인생이 해석되어 흘렸던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이제는 회개의 눈물이 되어 앞을 가립니다.
앞으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일은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텅 빈 제 속을 말씀으로 채우는 일입니다. 큐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한 걸음씩 저의 형편없음을 깨닫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가겠습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인생을 살다온 저이지만, 목사님께서 부족한 저를 용서하고 받아 주신 것처럼,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맞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오직 어리석은 자입니다.
(적용)
날마다 큐티를 제대로 하겠습니다.
오직 어리석은 자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에게 사랑과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