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사전의 뜻은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다른 방법을 구하지 않고 딴 생각도 하지 않으며 오직 그 길만 가는 사람을 우리는 어리석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22절에서 다른 물음에 대해서는 나도 그러하며 라고 답을 하지만 23절에서 그리스도 일꾼이냐는 물음에는 자신이 더 뛰어난 일꾼이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리석음으로 피하지 않고 그리스도 일꾼으로 겪은 고난을 이야기 합니다.
이에 비하면 저는 예수를 믿게 되면서, 믿으면서 예수님 때문에 받은 고난이 별로 없습니다.
약간의 불교 색체를 뛰는 가정으로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이었지만 결혼할 배우자가 예수를 믿는다고 했을 때도, 결혼 후에 교회에 나간다고 해도 집안에서 별 반대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 항상 불경을 틀어 놓고 듣고 있었지만 저와 집사람이 집에 가면 교회에 다닌다고 끄고 듣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교회를 다닌다고 오직 겪은 것은 제사를 폐하는 것 때문에 겪은 약간의 심적 고생(?), 이마저도 제가 그 자리를 피해 버리고 이것을 알면서도 묵인해 준 부모님 때문에 별 고난 없이 넘어 갔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제자 훈련을 받을 때도, 수요예배와 목장예배, 주일예배 등에 대해서 내가 지키려고 했을 때 다들 지킬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었고, 회식을 할 때도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누구도 거의 시비 걸지 않고 넘어 갔습니다.
내 세울게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 때문에 겪은 고난이라기 보다는 세상적으로 미련하여 겪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환경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경제적으로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뛰어나게 더 나아 진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보았을 때는 약함들 뿐입니다.
당대 신앙이라 신앙의 깊이도 앝습니다.
목자라는 직분도 먼저 오고 섬길 집이 있어서 입니다
그렇지만 그 약함들 가운데서 누리는 평강이 있습니다.
그 누리는 평강으로 인해 나의 약함을 자랑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약함 가운데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