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월요일
제목: 하나님께
고린도후서 9:1-15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풍성하게 하시고 연보를 하게 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모든 구제와 섬김의 주체도 우리 주님이심을 다시 새긴다. 섬김과 구제를 하게 하심도, 또 감사를 받으실 주체도 하나님이시다.
기도로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나의 악이 보인다. 또 저 깊은 내면에는 그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충분히 드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는 나태함이 있다. 또 하나는 아직도 분별력이 없는 나의 지혜 없음이 있다. 지금 해야 할 때인지, 멈춰야 할 때인지,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함인지 분별을 못한다. 옆의 지체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게 보이면 내가 돕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건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닐 때가 있다는 것도 알겠다. 잠자코 있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지금은 내가 움직일 형편도 아니긴 하다. 그래서 그런 형편으로 만드셨는지도 모르겠다.
분별력의 지혜, 하나님께 더 간구한다.
♡ 영광 받으실 하나님, 모든 사건과 환경. 주심과 거둬가심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에 감사합니다. 나의 나태함, 분별없음을 회개합니다. 십자가 분별력의 지혜로 때때로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4월 16일 화요일
제목: 견고한 진
고린도후서 10:1-18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늘 옆에서 주는 열매만 따먹었다. 내가 남편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내 마음의 모든 얘기를 지금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를 믿어주고 신뢰하기 때문에 거리껴지는 지난 일들, 또 생각나는 것들, 또 새롭게 보여지는 것들을 얘기해준다고 생각하니 감사하고 반갑다. 내용적으로야 실망스럽고 슬프기도 하고 허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고뇌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 왜냐 하면 마음이 멀리 떨어져있지 않고 함께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이다. 육신에 속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함을 애통하는 것이 아니고, 내 연민이라는 견고한 진, 자기애에 빠져 있던 내게 하나님이 그 진을 무너뜨려주tu서 내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셨다. 주님이 주신 생각으로 바뀌니 평안하다. 깊은 곳에서의 감사, 내면으로부터의 화해, 작은 파도에 또 흔들리고 요동도 하겠지만, 감사다. 남편의 수치, 숨기고 싶은 악임에도 자신의 마음을 열고, 내가 있을 곳을 마련해주는 남편, 사랑하고 감사하다. 그런 남편을 내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한다.
게다가 이제 거짓으로부터는 자유함을 느끼는 것 같은 남편, 축하하고 싶다. 음란의 문제는 나나 남편 모두에게 깊기 때문에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천천히, 조금씩 말씀으로 가지치기하며 주시는 만큼, 보이는 만큼씩 순종하며 함께 가길 기도한다.
♡ 오늘 신우회에서 내 모습 그대로, 드러내며 나누겠습니다.
남편과 아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문자를 보내겠습니다.
4월 17일 수요일
제목: 용납하라
고린도후서 11:1-15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이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용납하라는 말씀을 들으니 내가 용납하는 걸 잘 못했구나 싶다. 나는 용납하는 걸 잘 하는 줄 알았다. 그건 나의 착각이고 교만이었다.
이동의 기회가 많다보니 여러 교회를 다녔다. 처음 시작은 공주였고, 안면도였고 태안이었고, 의정부였고 동두천이었고 시흥, 김포, 청양, 김포, 이제 우리들 교회다. 내가 다닌 교회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또 설교 테잎으로 여러 교회 여러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왔다. 여기는 이래서 저기는 저래서, 이렇게 저렇게 판단했다. 균형 있게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귀만 커갔던 과정들이 있었다. 흔쾌한 말씀에 감동하며 감탄하고, 깨닫는 기쁨은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십자가 지는 적용이 없었다. 말씀만 좋았을 뿐이다.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 말씀을 보고 훈련받는 기회를 주셔서 그게 흡족하고 좋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내 일상에서는 갈급함이 있었다. 늘 말씀에 갈급했다.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들리지도 보이지도 해석되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열심은 있었지만 갈 바를 알지 못했다.
지금 우리들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중매해주시는 하나님의 열심, 감사다. 수요 예배와 주일 예배, 목장 예배, 양육 훈련... 나의 분에 넘치는 훈련의 때, 양육의 때임에 감사다. 그런데도 이제는 거기에 몰입하기만 하면 되는 데도 시간이 없네, 시간이 부족하네, 나의 핑계가 또 생긴다. 양육의 때에 충성하며 제대로 훈련받기를 기도한다.
♡ 양육 숙제를 주말로 미루지 않고 오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주신 환경에 대해 어리석다고 판단하지 않고 관리자, 동료.... 용납하겠습니다.
아들이 하는 최선을 내 기준의 최선과 비교하여 낮추지 않고 용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