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수요일
제목: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11-2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내 허무감에 빠져 또 다시 영화보기에 몰입했다. 남편이 옆에서 큐티해서 올리라는 말에 흥! 쳇! 콧방귀도 안 뀌었다. 남편에게 반항이다.
죽을까 두려워 운전도 벌벌 떨었는데, 출장 간 남편 차를 끌고 수요예배도 갔다. 죽기를 각오하니 무섭지도 않다. 운전, 별것도 아니네... 잘 도착하면 좋고, 혹시 사고가 나서 저 천국에 가면 더 좋고. 배짱이다. 자유롭다. 사실, 버스를 놓쳐서 교회까지 운전하기를 시도한 것이긴 했는데... 할 만하다. 40분이나 여유있게 교회에 도착하니 주차장, 차안에 앉아 남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술술 카톡으로 남겼다. 속이 다 시원하다.
말씀 듣고, 기도하는 시간... 나를 살아나게 한다. 그런데 큐티 나눔에서 무명인이 갖는 서러움과 소외감.... 나는 낄 때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에 또 어딜 기웃거리나 싶었는데... 한편 그게 하나님의 후대하심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정연훈 집사님, 많이 무거우시겠다. 십자가의 길로 들어섰다시며 목사님이 우시던데... 나도 그게 체휼이 된다.
큐티... 풍성한 나눔이 반갑고 감사하다. 적용과 순종의 본을 보여주시니 받는 은혜도 크다. 이제 좀 내 안에서도 정리가 된다. 하나님과 화목함의 증거로 나와 남편과 화목해야 함을 알겠다.
♡ 남편에게 서운함 삐침, 하나님께 향한 것임을 알고, 주님과 해결하겠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내 수준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 걸음씩 천천히 자라가는 나를 드러내며 인내하겠습니다.
4월 11일 목요일
제목: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 구원의 날
고린도후서 6:1-7:1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나는 아주 작은 꿈이 있었다.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꿈, 손 잡고 앉아 영화를 보는 꿈, 함께 본 영화 장면을 갖고 함께 얘기 나누는 꿈, 다정하게 손잡고 데이트하는 꿈, 어깨동무하며 함께 산책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꿈, 밤새도록 이 얘기 저 얘기 즐겁게 수다 떠는 꿈, 눈을 마주보고 앉아 깊은 대화를 하는 꿈, 아무리 바쁘고 분주해도 아내인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표현과 행동으로 사랑받는 꿈...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주 작은 꿈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드라이브하는 꿈, 함께 맛난 것도 먹으며 일상의 잔잔한 행복을 공유하는 꿈... 서로에게 가장 정직하게 행동해도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꿈, 아픔과 슬픔도 함께 나누며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부부의 꿈....
사건을 겪고야 현실이 보인다. 그 꿈이 내게는 작은 게 아니고 컸었다는 것도 자각된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더 아프다. 나는 남편에게 형편없는 사람, 가련한 사람 같다. 20년이 모두 거짓은 아닐 테지만.... 내 피부에 느껴지기는 현실 속에서 참과 거짓, 분별이 안 된다. 모두 다 거짓 같다. 작은 거짓이라고 하지만 하나의 거짓이 무서운 게..... 분별력을 흐리게 한다. 모두 다 거짓 같다. 남편은 내가 형편없으니까 아내인 나를 속이고 부끄러워한 것 같다. 존재감이 흔들린다. 내 사랑이 모든 게 혼자만의 상상이었고 착각이었다는 총체적인 부정...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남편 목소리만 들어도 달콤함이 느껴지고 설레이는데, 멀찍이 남편 자취만 보여도,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도 반가움에 온 세포가 살아나는데.... 나만 느끼는 사랑이었다는 게 만사가 허탈하고 공허하고 무기력해지며 삶의 질서가 무너진다.
“당신... 왜 그랬어요? 어떻게 당신이 내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묻지만, 대답이 없는 걸 보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겠다. 어쨌든 자각하고 깨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내 맘은 깨지고 심히 아프다. 결혼 전도 결혼 후도, 이 사건들이 드러나기 전과 드러난 후에도 우린 진지하게 대면하고 마주앉아 깊이 대화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이 사건에서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다. 그냥 덮을 게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만 해결할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항상 후순위였다. 때때로 모양으로는 남편이 할 일이 많아도 내게 시간을 내준다고 할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거기로 가고 몸만 옆에 있었다. 매번 그런 대접이라는 걸 알지만 거기에 익숙해지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상처가 된다. 앞으로도 나는 후순위 인생으로 이 땅에서의 삶은 마쳐질 텐데... 그래도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하는 기대감, 그 기대감은 또 실망이 되어 돌아온다.
괜찮다고는 말 못하겠다. 괜찮지 않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편 옆에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뭘까? 우리 남편은 내 장례식에는 올 것이다. 하지만 내 장례식에는 올 필요가 없는데... 차라리 그 때 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지금, 오늘, 여기에서 시간을 내주면 좋겠는데.... 내 장례식장에 와서 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 때 아내와의 이별로 상실감에 울 것 같으면 지금, 오늘, 여기에서 내 슬픔을 체휼해주고 공감해주면 좋겠는데... 이후에는 그때에는.... 이라는 말은 거절하고 싶다. 그때에는 저 천국 예수님이 나를 맞아 본향집에서 날마다 함께 지낼 테니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테니까. 그때에는 남편이 내 옆에 있는 것, 나와 함께 울어주는 것, 그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지금, 오늘, 여기에서 남편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다.
예수님 닮은 거룩하고도 온전한 사랑...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듯 그같은 남편의 거룩하고 온전한 사랑... 다른 여인들과는 분리된 그냥 나만의 거룩하고 온전한 내 남편, 그 남편의 사랑, 그 남편과의 깊은 교제, 친밀감의 표현, 다정하고 부드러운 나만의 남편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하나님보다 남편을 더 묵상한다. 내 수준이다. 아닌 척 할 수도 없다. 사건 속에 수준이 드러난다. 적용 하는 척, 순종을 흉내 내는 척 해왔지만, 내 수준과 바닥이 드러난다. 그게 부끄럽긴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나인 걸.
슬픔 많은 이세상.... 나 자신을 알게 하신 주님, 그리고 그렇게 그 역할로 내 앞에서 수고하는 남편이다. 감정의 끝까지 내 절망의 끝자락까지 가고 있는 나이지만, 최소한 말씀이 있는 공동체에 있게 하신 내 주님께 감사하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임을 오늘도 말씀해주시는 내 주님께 감사하다. 말씀의 끈은 놓지 않고 잡을 수 있는 힘은 주신 게 감사하다.
이상하다. 남편을 묵상하다보면 주님이 더 잘 묵상된다. 우리 주님도 그러셨겠구나! 매번 내게 후순위로 대접받는 주님의 심정도 그러셨겠구나! 주님의 마음이 조금은 읽힌다. “주님, 이해하시잖아요? 제 사정 아시잖아요? 오늘 너무 분주하고 바쁜 거 아시지요? 죄송하지만, 담에 더 길게 만날게요.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주님은 나랑 날마다 함께 계시잖아요? 이번엔 살짝 주님이 양보해주셔야겠네요. 언제든지 우린 만날 수 있잖아요. 짬짬이 볼 수 있는걸요. 괜찮지요? 주님은 다 아시니까 괜찮지요?.... ....” 또 수 없는 변명과 핑계, 합리화, 거짓......
얼마나 나는 우리 주님을 홀대하며 무시했었던가? 섭섭하셨겠다. 나처럼 서운하셨겠다. 나처럼 슬프셨겠다. 주님을 생각하며 거룩함을 이루어가며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남편이 이래서 안 되겠다, 환경이 이래서 안 되겠다. 하는 내 기준의 합리화... 내 악과 죄가 보인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 주님, 날마다 들려주시는 말씀 속에서 나를 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을 후순위로, 또 거룩하게 살지 못했던 저의 변명과 합리화, 핑계를 회개합니다.
-저녁에 기도하는 시간을 떼어놓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같은 내 안의 음란과 죄, 악을 내놓고 회개하겠습니다.
-출장 중인 남편에게 카톡으로 대화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