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4:1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의 반응은 그 사람의 수준입니다.
저는 성격상 억울한 일을 당하면 즉각 응수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은 일에 발끈 하면 나중에 본질을 잊어버릴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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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당한 말도 열 받았을 때랑 진정됐을 때랑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에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합니다.
목사가 자신이 목회한 교회로부터 가짜라는 배은망덕을
당했을 때 열 안 받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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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발끈할만한 도전을 받고서도
공격적인 액션을 유보하고 일단 시간을 벌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후 에베소에서 눈물로 쓴 편지를
디도를 통해 교회에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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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다시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화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위안을 받게 되는데
이 기쁜 소식을 듣고서 쓴 답장이 고린도후서입니다.
바울은 목숨 같은 고린도 교회에 양심에 부끄럼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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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을 했으니 실력이든 도덕성이든 꿇릴 것이 없었으나
사건이 어느정도 진정되고 나서야 자신을 변호합니다.
너희도 나도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복음의 능력이
하나님께로 나오는 이상 피차 십자가가를 지자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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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뚫고 부활로 날자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는 간증이나 설교가
듣기 편하고 받아먹기만 하면 되니까 좋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늘어나고 내가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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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기 시작하면서 아무리 기가 막힌 간증을 들어도
그것은 한계가 있고 성경공부갔는데 리더혼자 설교하는
모임이면 죽을 맛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학년이 올라갔으니 제자훈련도 달라져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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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고린도 전서와 다르게
고린도 후서에서는 교리적인 부분을 다루지 않고
같은 길을 가는 동역자로서 고난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말귀 알아먹을 만큼 자란 자녀에게 네가 봐왔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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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주이신데 우리 함께 고민하면서 진짜 그 것이
맞다면 복음에 합당한 그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그 것이 고난과 핍박이라고 해도 능히 극복하면서(:8.9)
끝임 없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면서(:10)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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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을 드러내자고(:11)말합니다.
복음 안에 십자가가 들어있기 때문에
성도의 고난은 필연적입니다.
반드시 내가 죽어야 살아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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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질그릇 같은 저에게 영광스런 보화인
복음을 주시고 사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빛을 비추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낙심치 말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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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고 큰 영광을 이루기에 고난을 기뻐하며
부활을 기대하겠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들에 마음을 두지말고
속사람을 자라게 하는데 집중하게 하옵소서.
2013.4.8.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