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시작 그 첫 단추를 달며.........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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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19
지난 겨울
유난히 쏟아지는 폭설에
먹걸이 구하려
다른 해보다
자주 자주
뒷 정원에 나타났던 한 쌍의 사슴
지난 주일
김 양재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설교를
울 딸과 인터넷으로 듣다
둘이서
그만
파안대소
알라스카에
늑대가 사슴을 잡아 먹는 통에
늑대를 다 죽어버리니
사슴은 증가하더라는 것
헌데
모다 병이 들어 왜 그런고 했더니
늑대가 없어 달리지를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래 다시 늑대를 풀어주었노라고.........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사슴 이야기는
지난 겨울
종종
나타났던 한 쌍의 사슴을 다시 상기시켜 주게 되였고
오직
먹걸이를 찾기 위해서
위험을 무릎쓰고
골짜기 밖
인가로 달려나온 한 쌍의 사슴처럼
저보고
안일과 안주에 머물지 말고
다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으로 달리는 자가 되라는 인정많은 격려로 들려지더라고요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십년전인가?
울 시모님께서
한 맺히고 환란 당하고 빚진 자들이 다 다윗에게 오더라는 말씀을 크게 읽으시곤
이미 목회를 하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시며
울 아들도 이런 목회를 해야되는데....... 큰 소리로 독백하시는 것이였어요
집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저하고 어머님뿐인지라 당연히 그 말씀을 가슴 속에 깊이
오늘날까지 끼고 사는 사람은 저일 수 밖에 없네요
오늘 아침 6시 넘어 조반을 먹던 중 남편이 어제 올린 큐티엠가운데 굶는 지체가
있다는데 우리 교회는 어떤지 살펴 보아야 겠다고..........
오늘 말씀을 여니
의인의 입술은 생명의 샘이라하네요
이 세상 어디에 의인이 있어 생명의 샘을 흘러주고 있을까 싶네요
성경이 정의하는 바 지상엔 한 사람의 의인도 없다니 하는 말이네요
오직
울 주님의 입술만이 생명의 샘인 것을 보는 아침입니다
분명 내 입술이나 주님 입술이나 다를 바 없는데
제 입술에선 독소를 내는 물이 흘러 나오고
주님 입술에선 제 독을 정화시켜주는 생명수가 흘러 나옴을 보며
이제나
저제나
주님 입술만 바라보고 살아야하겠네요
그 주님께서 요즘 나와 너란 관계의 축을 이루며 연속적으로 제게 하시는 말씀이 있답니다
얘야 ! 너는 나로부터 만 달란트나 탕감받은 자 아니냐?
아니요
전 그렇게 많이 탕감받은 기억이 없는데요
그리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젊은 날엔
중국 선교비로
혹은
가난한 주님의 형제 자매님들이 주님께 눈물로 드린 물질로 살아 본 적도 있었고
이민 와서는 주님의 종들의 은총으로 물질적인 환란에서 벗어난 적도 있으니
네, 저는 만 달란트 탕감을 입은 자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네요
그럼 울 주님 또 말씀하십니다
너도 그리해라!!!!!!!!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말씀인지요
허나 그리 안하면 안되는 것 너무나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니 군소리 못하지요
대신 순종할터이니 도와주십시요
그런 순종의 의지로 제 몸을 종부리듯 하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그러다보니 저는 은행 다니기 바빠요
어려운 한 지체를 품고 함께 가노라면
때 아니게
아침에도 은행에 가야하고
오후에도 은행에 가야하는
빵꾸 날까 이리 틀어 막고 저리 틀어 막고
그전부터 접고 싶었던 이 고단한 날개
허나
이제는 감사하게도 제가 변한 것을 보네요
접고 싶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영광 중에 풍성하신 주님의 부요와 존귀와 권세를 붙잡고
더욱 더 활기차게 날아 올라야겠다는 철이 드니 말이예요
철들면 망령이라는데
요즘
제가 망령들까 울 큐티엠들이 쏟아 붓는 시선을 생각하면
왜 그리 감사한지요
그들의 관심에도 목사님께 드렸던 감사와 마찬가지로 감사드립니다
그래 요즘 잠언 8장 말씀에서 이 혼돈과 공허 혼란의 21세기에 살고 있는
제게 또다시 조화의 시작 을 선포하시는 주님 말씀과 연결지어 깊이 묵상하는
말씀이 있답니다
그것은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잠언 8장 20절)
라는 말씀입니다
분명 주님께서 다니시는 길이 되어야만 조화의 시작을 이룰 수 있는데 그럴러면
과연 나는 어떻해 정의로운 길이, 공의로운 길이 될 수 있을까?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과 동시에
내 속에 내면화되는 길은 없을까?
이스라엘에 왕의 길이 따로 있어 왕은 그 길로 다녔다는데
하물며 왕 중 왕되신 울 주님께서 다니시는 길이시야!
울 주님 지상에 오시여
당신 다니실 길 없어
당신 스스로 길 되어 사시다 가신 분~~~
저도 길이 안보일 때는
친히 말씀으로 들려주사 그 말씀을 믿도록 기꺼이 만드사
믿음의 오솔길을 닦아 주시던 창조의 주님~~~~~
그리 앞장 서시며 길을 터주시던 주님을 본받아
이제는 아주 비좁아 겨우 새 한마리 날아갈 수 있는 영공의 샛길일지라도
주님이 왕래하실 수 있는 분명 정의롬고 공의로운 길을 닦아 놓아야 할 터인데....
그래야 이 조화의 시작이 불순종의 영들과 온갖 악한 영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중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터인데..........
그런 묵상하다보면 당연히 그분이 즐겨 다니실 정의와 공의의 길에 골몰하게 되겠지요
헌데 제가 주님으로부터 탕감 받았다는 말씀을 듣기 이전과
탕감을 받았다는 말씀을 듣고 난 이후의 공의와 정의는 그 시각이 전혀 새롭더라고요
분명 구약의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십자가의 공의와 정의에 입각한 보다 더
온전한 시각이였으니깐요
그것은 용서 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길 정의 공의하면 용서와는 별개의 것으로 보게 되지요
허나
나는 주님께서 흘려주신 보혈의 능력으로 나를 탕감해주셨다는
그 말씀을 들은 후부터는 그분께서 즐겨 다니시는 공의롬고 정의로운 길이야말로
용서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네요
용서를 받았으니 너도 용서하며 살아라 그 길에 내가 즐겨 다니며 조화의 시작을 이루어
주겠노라는..............
그런 맥락에서 오늘 주어진 말씀 중 한 말씀만 세계큐티엠들과 함께 나누고저 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언 9장 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 본절 하반절을 고려해 보건대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모순을 가져왔던 고대 히브리 사회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을(민 35:16-21;신 19:21)
유의한 듯한 본 문구는 모든 다툼의 원인이 사악한 증오의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 여기서 허물 ( 폐솨임)은 이탈하여 반발하다 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 특별히 개인적, 직접적 피해를 유발시키는 범죄를 가리키며,
가리우느니라 (* , 테카세)는 덮는다 란 뜻이다. 사랑은 자신에게 가해진 범죄의 직접적
피해로 유발되는 모든 적대감과 증오의 감정을 순화시키며 그 범죄 자체를 용서하게 한다
(고전 13:4;약 5:20;벧전 4:8)*.
그러고보면 이 세대의 혼란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들의 맺힌 한이나 빚이나 환란등이
사랑으로 덮힘을 받지 못한채 유업처럼 대물림된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예요
한과 빚과 환란의 그 혼란과 혼돈의 세계에
오직
십자가의 정의와 공의로 용서하는 사랑의 길만이
빚으로
한으로
환란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조화조차 깨어진
황량한 그곳임에도
눈부신 평온으로 일어나는 아침과
낮의 해와 함께 수고하는 일터와
밤의 달과 별들 아래 수고로 잠드는 안식의 저녁을 창조해 주시고
온갖 좋은 것으로
누릴 수 있도록
조화의 시작을 감행하셨던
태초의 주님께서 오늘도 변함없이
오시는 길임을 다시한번 명심하며...................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