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토요일
제목: 이 일 후에
요한복음 19:31-42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사랑이고 사랑은 분별이라고 하셨다. 끝까지 분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신 우리 주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말씀대로 이루신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으시고, 그들이 찌른 자를 보리라 하신 그 말씀까지도 주님은 다 이루셨다. 우리 주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홀대하지 않으셨고, 하나님 역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한 마디도 이루지 않으신 게 없으시다. 그게 우리 주님이시라는 게 자랑스럽고 신뢰롭다.
끝까지 십자가를 지시는 수고를 감당하셨던 우리 주님, 나는 빨리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싶어하고 가능하면 십자가에 달리는 수치를 겪고 싶어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내게 주어진 것에 순종하는 척은 하지만, 슬프기만 하다. 기쁘지 않다. 왜 내가 겪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원인을 내게서 찾으려하며 나를 설득하지만, 그게 상대의 구원을 위해 내가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이타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저, 내 삶의 결론으로 마땅함에 무릎을 꿇을 뿐... 결국, 나는 여전히 이기적인 나의 욕구 충족에 머물러있다. 내 슬픔이 더 크고, 상대의 수고, 상대의 구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이 두려워서 숨겼다고 기록한다. 이 일 후에야 비로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한다. 에수님을 따르며 유대인이 두려워서 숨지는 않았던 제자들 가운데 돌아가신 예수님을 거둘 자가 아무도 없었던 그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비로소 드러낸다. 아무도 없는 그때에 십자가에 죽은 우리 예수님 장사를 위해, 왕으로 죽으신 우리 주님을 위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거둔다. 감격스럽다. 십자가의 능력이다. 두려움을 이겼다.
십자가 사건 이 일 후에, 남편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나의 수치가 드러난 이 일 후에, 결국은 나의 음란과 악, 죄를 보게 하시는 우리 주님이시다. 핑계와 합리화, 별것 아닌 것 같은 경시, 여전히 더 감추고 안주하고 싶은 거짓과 음란을 만난다. 그게 나의 실상이기도 하다. 쉽게 끝내고 덮을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해야 할 지도 모르는 나의 악임을 인정한다. 괴롭고 슬프고 힘들지만... 거룩을 향한 가지치기에 동참하고 있음에 감사가 더 크다. 점점 드러나는 나의 실상을 마주할 수 있어 감사하다. 두려움을 이겼다.
내가 로맨스 소설에 잘 빠졌던 것도 달콤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쏙 빠졌던 것도 나의 음란이 시작임을 알기는 했지만.... 내 안에서는 별 것 아니야, 그 정도도 못할까?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타협과 합리화의 악!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값을 치러야 하는 악임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악! 십자가 죽음을 맞이한 오늘에서야 비로소 보인다. 남편의 태도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말씀에 목이 말랐다. 너무나 목이 말랐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에서 주시는 말씀에 해갈이 되고 우리 목사님과 우리들 교회를 사랑한다. 나의 악과 죄를 면밀하게 세밀하게 보게 하시고 드러나게 하시는 매일 매일의 말씀, 방향을 잡아주시고 맥을 짚어주셔서 결국은 우리 주님과의 깊은 교제로 이끌어주시는 양육 프로그램과 목장! 너무도 마음에 쏙 든다. 자기 죄를 잘 보고 잘 적용하며 가는 지체들이 있어 덤으로 함께 누리는 은혜도 크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쓸쓸하고 고독하고 외로웠다. 내 외로움..... 그런데 어제 말씀에서 목사님 역시 외롭다는 고백! 또 우리 주님 역시 끝까지 외로웠음을 인식시켜주시니 이제 해석이 된다. 외로움도 나의 주제가였는데... 내가 마땅히 감내해야 할 것임을 알게 되니 시원하다.
이 일 후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내게 주시는 귀한 주님의 선물, 성금요일을 보낸 후에 내게 주신 귀한 선물에 감격한다. 내게 있던 두려움,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 지혜 없고, 사랑 없고, 분별 못하는 나의 악! 선한 역할에만 목을 매고 살았던 잘못된 목적.... 이제야 보인다. 이제 내가 가야 할 사명은 구원임을 다시 또렷이 본다. 내 옆에 있는 가족 역시 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씀을 이제야 알게 된다. 영혼 구원이 내 사명임을 알게 하시려고 십자가 지신 우리 주님, 감사하고 감사하고 찬양한다.
♡ 십자가 이 일 후에, 나의 사명을 보게 하신 우리 주님, 감사합니다. 두려움, 분별 없음, 지혜 없음, 사랑 없음을 회개하며 말씀에 거하겠습니다. 공동체에 속해서 주시고 해석해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적용하겠습니다.
남편에게 지랄을 해야 할 때, 끝까지 지랄하겠습니다. 나의 역할에 매이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구원을 향해 분별하며 적용하겠습니다.
나의 음란함, 죄와 악에 대해 경시하지 않고 두려워하며 아버지 앞에 토설하며 회개하겠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 중에 외로움도 함께라는 것, 명심하고 말씀 가운데 교제하며 잘 견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