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끝자락조차 잡을 수 없는 나인 것을....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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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17
어젯 밤 남편이 어려움을 당한 성도님의 일을 해결해주느라 진액을 빼고 집에
들어왔네요
남편과 그 성도님의 어려움에 대해 주고 받다가 제가 그 성도님은 그렇게 낮은 처지에
있어야만 남들을 좌지우지하는 성향에서 좀 벗어날 것이라는 말을 했네요
그런데 오늘 아침 그만 그 성도님의 꿈에 놀라 잠을 깨게 되더라고요
꿈속에서 그 성도님이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제가 놀라
당황하는 바람에 눈을 떴거든요
그래 아침부터 회개했네요
그 성도님의 헤게모니적 기질을 놓고 꼭 그 성도님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아야만 고칠 수 있다고 말한 제 자신이 얼마나 공의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길을 걸으며 하는 말이였을까?
사실 울 주님께서 그 성도님의 마음을 단 한번만이라도 만져 주시사
예수를 믿노라하면서도 아직껏 자신이 모든 것을 주관 주장 주지 하고자
하는 교만한 성향을 깨닫게만 하시면 그 즉시 고침을 받을 수도 있는 영적 질환인데
왜 구태여 나도 메기 힘든 삶의 고단한 무거운 멍에를 그 성도님께 씌웠는지....
아무리 말이라해도 말이 주는 영적 기류를 어찌 무시할 수 있으리요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오늘 역시 목마른 사슴이 되여 나와 너의 관계로 불러주시는
말씀앞에 무릎을 끓으니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네요
20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I always do what is right,)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차마 악을 보지 못한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항상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그 분께서 제게 질문하시네요
너는 항상 정의로운 길로 행하냐?
너는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냐?
주님
저는 그렇지못합니다
어쩌다가는 정의로울 수 있고 어쩌다가는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닐 수는 있겠지만
항상은 아닙니다
아니
어쩌다가도 정의롭게 행한 적이 없으며
어쩌다가도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걸어본 적이 없었네요
주님의 보혈로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제가 하나님께 질문이 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아빠 하나님께선 악한 저와 늘 함께 다니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 모순을 어떻해 처리할까요?
그런 질문을 드릴 때
울 아빠 하나님께서 또 다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네요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By finding me, you find life, and the LORD will be pleased with you)
아하 그렇군요
울 아빠 하나님께서는 악한 저를 보시고 은총을 주신게 아니라
제안에 흐르는 주님의 생명이신 주님의 피를 보시고 저와 늘 함께 해주시는 은총을
베푸셨군요
먼저 제게 당신의 아들을 주시고자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선재하셨기에
내게 끊임없이 찾을 것을 명하셨던 하나님-
하여
끝내는 찾아 얻도록 만드시는 성령님-
말씀과 성령님이 아니면 도무지 잉태될 수 없는 주님의 생명-
그 주님의 생명이 제 안에 계시니 부활 후
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라 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바 그대로
제가 감히 전능자를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군요
울 주님께서는 늘 정의로운 길로 행하셨으며
늘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셨는데
그가 그렇게 다니신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네요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 재물 (예쉬)은 탁월한 존재 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며, 세속적인 척도에서의
값비싼 재물이 아니라 지혜를 통해 얻어진 지고한 신앙적, 도덕적 판단에 비추어
가치있는 재산이란 뜻이다(Delitzsch). 얻어서 ( 레하느힐)는 유산으로 상속받아서
란 뜻-성경 네이버에서 펌)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아들이 되는 것이였네요
아버지 것이 다 내 것이라고 자신있게 선포하셨던 주님-
그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
이 말씀 또한 진리로서 이 진리의 말씀이 갖는 능력의 어떠함은 곳간을 채우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는 것을 울 아빠 보여주시네요
글쎄
여기서 곳간을 채운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울 아빠에게 한 이삼십년은 질문한 것 같아요
선명한 답변을 얻기까지 아직도 질문 중이지만
어렴풋이 오늘 보이는게 있네요
마치 십자가 끝자락을 이제서야 간신히 보는듯................
보면서도 저야말로그 십자가의 끝자락조차 볼 수 없는 소경임을 고백하게 되는군요
제 친정어머님께서는 친정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참 어렵게 사신 분이셨는데
그 어려운 시절 제 첫 소산물을 받자마자 봉투 채 주님께 드린 분이랍니다
어머님께서는 저를 앉혀놓고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언 3정 9절10절)
는 말씀을 가르쳐주신 분이십니다
가르쳐주셨으니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제 몸이 약하니 이 딸이 하나님 도움 없이는 도무지 험한 세상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연륜에서 나온 지혜이기도 하겠지요
그 어머님의 믿음에 순종한 기억이 있기에 언제나 물질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아빠 왜 내 돈 안줘요? 내 첫 월급 하늘 나라 은행에 입금시켜 놓았는데
왜 말씀대로 내 창고를 채워주시지 않으세요?
하며 엄청 깡쨔를 부리며 이제껏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세월이 흐르니 돈을 종부리듯 부리는 창조적인 의지가 생겨나더군요
돈을 종 부리듯 부리면 맺혀지는 열매가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삶으로 수난 당하는 자의 생명을 구하는
구속사의 열매가 쌓이는 곳이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곳간 일 것이라는
상상이 되네요
그런 맥락에서 곡간을 채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울 주님을 통해 이루실 일이라는 확신이 드네요
울 주님 제자들에게 하늘 창고란 말씀을 하신 적도 있으신데 그 곳간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그분께는 다함없는 재물과 지혜와 지식과 은사와 권세와 권위를 비롯해
세상 모든 영혼이 다 그분께 달려 있다지요
그래
새 하늘
새 땅의 곳간을 채우는 일에 늘 그와 함께 있기를 사모하는 제게 오늘 또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네요(오늘은 공부를 많이 하네요)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왜 하필이면 조화의 시작이였을까?
내가 태어난 이 21세기는 그야말로 혼돈과 혼란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만큼 조화의 시작 을 하나님께 구해야 할 때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조화의 시작이 태초에 있었듯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혼돈과 혼란한 와중에서도 조화의 시작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이 큐티엠이 저로인하여 혼란해진 그 이상으로
울 아빠 하나님 그분 곁에는 주님을 두시고 그 분앞에는 나를 불러 앉혀 놓으시곤
이렇듯 제안에 조화의 시작을 선포하시는 창조주 아빠를 보게 해주시네요
울 아빠 하나님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다시 사신 주님을 곁에 두실까 묵상해보니
그 주님 곁에 안두시면 제가 거룩하신 지존자앞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아시기 때문이지요
알게모르게 지은 죄들에 대한 형벌을 받을까 싶어 어찌 하나님앞에 나아가겠어요
이리 저를 불러 조화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겠노라고 말씀하시는 창조주를 뵈오니
참으로 태초가 어제인듯 감개무량합니다
이 조화의 시작을 함에
울 아빠 하나님 언제나 그 곁에는 주님을 두시고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결코 주님외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무익한 종이라는 의식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조화의 시작 곧 혼란한 시대를 재창조 하는 구속사의 관점에서
사람이 일을 한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좇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새로운 우주적인 가족관을 심어줌에도 울 주님 말씀하시길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 중점을 둔 것을 보면 오직 주님을 곁에 둠이 가장
정의롭고 공의로운 길임을 깨닫게 되는 아침이네요
더구나 이 주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여 우리들과 함께 33년간을 사신 분이시기에
너무나 우리들을 잘 아시는 분이시니 그분을 당신 보좌 우편에 두시고 여전히
조화의 시작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
저는 안심하고 울 아빠 하나님께 저를 통째로 맡깁니다
어디까지 저를 통째로 맡기냐면 저를 십자가에 메달아 죽이기까지 맡깁니다
이리 맡기고 보니 과연 내가 십자가에 메달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일까?
마치 베드로가 자신은 도무지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메달릴 자격조차 없다며
꺼꾸로 못박혀 죽었듯이.....................
그러고보면 나는 진정
십자가의 끝자락이라고 잡을 수 없는 자라는 것에 오늘 엄청난 목마름을 느끼는 하루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