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었나이다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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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16
아침에 눈을 뜨니 초록이 눈부시게 한 눈에 들어오네요
그제서야 저는 지난 밤 거실에서 한 밤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정원 가득 우거진 수목들 새새로 조각 조각 파아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수목가운데 가장 키가 큰 나무 꼭대기의 끝자락이 자꾸만 살랑거리네요
이른 아침 공중엔 바람 한 점 없는듯
모든 나뭇가지들은 정적을 취하는데 유독 그 나뭇가지 하나만 살랑거리며
날 부르고 있네요
행여 저 나무새새에서도 지혜가 나를 부를까 싶어
유심히 보니 한 마리 애기 다람쥐가 그 높은 고공을 무섭다 아니하고 즐겨 놀고 있네요
아하 저렇게 나도 아빠 무등 타고 철없이 뛰놀던 적이 있었겠지...............
허나 그런 상념도 잠시 잠깐일뿐 묵상하고자 일어나 컴을 여네요
마침 김양규 장로님께서 올려주신 묵상속에 울려퍼지는 찬양에
귀를 기울입니다
역시 찬양속에서도 지혜는 여전히 나를 변함없이 부르고 있었네요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픈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를 부르면 부를수록 찬송 역시 미련한 저를 깨우치며 우둔한 저를 새롭게
해주는 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 그 누가 있어 내 무거운 죄짐을 벗겨줄까요
울 주님외 누가 날 위해 온갖 조롱과 수치를 다 받아 마시며 죽기까지 내 죄를
그 귀한 성자의 몸으로 담당해주셨던가요?
이 사랑 생각하면할수록 주님은 떠날 수 없는 나의 주인으로 내 마음의 보좌에
친히 앉아 계셔야 할 분이신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 선포함에는 오늘도 나는 그 주인 앞에
다만 무익한 종으로 살기를 원해서 일 뿐입니다
그간 나는 너무나 많이 유익한 종으로 살아 주님을 욕되게 한 것은 아닐까
심히 두렵습니다
이제껏 눈과 눈으로 얼굴과 얼굴을 보며 살아왔던 세월의 공간속에서는 인정과
사랑도 많이 받아 누리며 살았으니 응당 이제는 미움과 질시 모욕 수치도 받아야
함이 마땅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 눈으로 직접 얼굴들를 보지 못했고 내 귀로 직접 그 얼굴들의 음성은 듣지 못한채
그저 영과 영으로 오가는 이 광속의 인터넷 거리이지만 21세기 새로운 땅으로 정착되어지는
이곳에서 이제 나는 이미 내 제자됨의 십자가의 때속에 머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마치 욥이 축복도 받았으니 어찌 저주는 아니받겠는가? 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허나 실로 바라긴 내 죄로 인해 받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건지는 아름다운 구속사의 선을
행하다 받는 미움과 질시와 수치와 모욕이 되길 기도할 뿐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제자들앞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스스로 거룩케한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이미 거룩하신 주님께서 또다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스스로 거룩케하실 지경이라면
하물며 저같은 용서받은 죄인이야............
울 주님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따로 구별된 속제물로 떼어 내는, 즉 자기의 살과 피를
성별하시여 떼어내시는 십자가상의 자신을 일컬어 스스로 거룩케하노라 는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계시네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주님의 내면화된 사랑은 그렇게 십자가의 행동으로 드러나게
됨을 보게 되는 아침이네요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내면화 작업이라면
나를 간절히 찾는 것은 내면화된 사랑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1)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과연 내가 간절히 찾아 만난 나 는 어떠한 나일까?
한번쯤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노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세대에 만나지는 주님은 필경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주님 이라 선포하고 싶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저는 그 구하는 것이 어찌나 두렵고 떨리던 것이였던지요
그의 의중엔 단연코 십자가의 의 가 선두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애써 구해야할 것이 시공을 충만히 덮고 있는 광활한 지혜에서 내 손과 발에
정확히 꽂혀야 할 지혜가 갈보리 십자가의 주님임을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워 뒤로 물러 서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글쎄 무엇이 저로하여금 여기 이토록 날마다 나오게 하는 것인지........
이곳에서도 역시 십자가의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기에 나오시는 것이겠지요
주님께서는 저를 그 십자가 위로 올라 오라고 계속 부르시기 때문이지요
내 스스로 벗는게 아니라 벗김을 당한채
올라가 그분이 부르짖었던 십자가상의 말씀들을 저역시 곰곰히 새겨보는
영혼의 수고를 치뤄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분께서 그렇게 죽으셨기에
그분처럼 죽어간 수많은 사도들과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반열을 좇아간다는게
어찌 말로만 묵상으로만 되는 것일까 다시한번 절감하네요
오늘 말씀을 보니 지혜를 일컬어 내 누이라 내 친족이라 부를 것을 권면하셨던 어제보다
더 가까운 관계로 저를 부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나와 너의 관계로 부르는 것을 보네요
울 주님 저희들의 맏형님됨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셨다는데
그래서
그것도 과분한데 이제는 단 둘만의 관계속에 친히 당신을 계시해주시고자
나와 너라는 관계의 축속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
그 소리는 온 천하를 호령하시면서도 저를 부르시는 친근한 목소리이십니다
오늘 하루
그 친근한 목소리에 제 온 몸을 드리며 무익한 종으로서의 하루를 보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