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월요일
제목: 나는 아니라
요한복음 18:12-27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예수님은 죄로 인한 결박이 아닌 구원을 위해 결박당하신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고자 순종하신다.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의 그길을 가신다. 묵묵히 가시는 그길, 주변인으로 탄생부터 스캔들을 일으키셨던 예수님은 겉모습이 영광스럽지 않으셨다. 나는 그것을 어제 말씀을 통해 비로소 직면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을 보이신 예수님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멋있고, 인기 있고, 표적과 기사를 보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임이 명명백백 드러나 당대 백성이 따른다고 착각했다. 다만 율법에 매여 유연성과 융통성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하셨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평범하고 비루하고 비천하여 믿고 따르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그런 신분이셨고 또 오늘 구원을 위해 어린양같이 결박당하시는 분이신 거다.
나도 베드로다. 그 예수님을 따르긴 하지만, 영화롭지 못한 자리, 영광의 자리가 아닌 그 곳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척 부인하고 부정한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분이신 양 말로 행실로 아니라 한다. 예수님 홀로 감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멀찍이 서있다. 공부 못하는 아들과 나랑 상관없는 듯, 거짓말 하는 아들도 부인한다. 공동체 앞에서 그런 고백을 해야 하는 남편 옆에 있는 게 수치스럽고, 그런 남편의 모습을 만나야 하는 내가 슬프고 자기연민에 운다. 아들의 모습에서 남편의 모습에서 부정당하는 예수님을 만난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부정하고 부인하는 베드로를 만난다. 그 자리가 영광스러운 자리였다면 내 모습은 어땠을까?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당당하고... 내가 알고 있는 분 맞다. 우리 선생님이시다. 우리 아들이다. 우리 남편이다. 얼마나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을까?
예수님이 가신 그길, 적어도 해마다 한 번씩 묵상했다고 쳐도 25번은 봤을 본문, 그럼에도 여전히 멀찍이 서서, 부인하고 부정하는 나를 만나는 게 괴롭다. 여전히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오셔서 가는 십자가 그길을 동행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슬프다. 아들과 남편 가운데 함께하시는 우리 예수님, 혹여 겉으로는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예수님이 오시려면 내 죄가 드러나야 하기에 내 옆에서 수고하는 아들과 남편, 사랑한다. 나와 상관있기에 맞다! 인정한다.
♡ 베드로처럼 부인하고 부정하는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남편과 아들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하고 인정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수고하는 남편을 잘 섬기고 아들을 잘 양육할 수 있도록 지혜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