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토요일
제목: 아버지여
요한복음 17:20-26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나는 모태 신앙이 아니다. 모태 신앙이 아닌 것에 대해, 나의 뿌리가 약함에 열등감이 있었다. 모태 신앙이 부럽고,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친구들을 보며 내가 뿌리가 약하니까 사건에 일희 일비하는구나 나를 합리화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심을 본다. 그 사실에 감격스럽다. 누군가 기도하시는데 그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외롭고 쓸쓸하고 연약해질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복음 성가에 위로받고 눈물짓고 감사했었다. 오늘, 또 그분이 주님이심을 다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말씀 앞에 여전한 감동이 된다.
나는 감정에 기복이 많다. 내 감정을 따라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 내 뿌리에 대한 흔들림은 신앙뿐 아니라 내 자리, 내 위치, 내 역할에까지다. 우리들 교회에서도 처음에 내 교회가 아닌 죄패가 많은 그분들의 교회에 나는 깍두기였다. 목장에서도 내 역할에 대해, 내 호칭에 대해 뭔가가 불편하고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번 주 내내 감정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나를 만난다. 주님의 통치아래 내놓지 못한 나의 악이다. 남편의 무감각함에 슬프고, 남편의 고백에 남편의 모든 행동에 대해 의심이 들고... 남편의 숨겨진 속내도 모르고 작은 것에 기뻐하며 감동하며 감격하고 감사했던 나의 표현들이 하찮게 여겨지고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 남편이 싫고 밉다. 악을 쓰고 싶고 남편을 100대는 때리고 싶다. 그러면 속이 시원해질까?
나는 여전히 말씀에 통치를 받지 못하고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말로는 주님, 말씀하시면.... 하리라 하지만, 주님 말씀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라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씀하셔도 죽는 건 싫어요~가 내 반응이다. 내 슬픔과 우울감으로 내가 주님께 드릴 최소한의 적용과 순종조차 미루고 있는 게 내 수준이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그 사랑하심, 세밀하게 내 마음을 만져주시는 우리 주님의 손길과 눈빛, 그 마음이 전해지니 얼었던 내 마음이 녹아진다. 또 녹아진다.
주님, 나의 주님! 사랑하고 감사해요. 주님이 우리 주님이신 게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주님이 내 주님이시고 내 신랑이신 게 너무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 예배드리러 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셔서 녹아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3월 24일 주일
제목: 아버지께서 주신 잔
요한복음 18:1-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리라 하시는 주님의 고백! 그러나 나는 내 권을 쓰고 싶어한다. 베드로가 나다. 내가 갖고 있는 칼, 쉽게 빼든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칼을 꽂으라 하신다.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
남편에게 비아냥거리고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따지고... 거절하고 짜증내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나의 칼! 주님이 꽂으라 하신다. 그 말씀, 죽음을 맞이하며 하시는 마지막 유언같은 그 말씀, 내가 쉽게 불순종할 수 없다.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지 않으시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대로 다 이루셨고 순종하셨던 주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 내가 무릎을 꿇는다. 내가 비록 죄와 악, 음란으로 가득할지라도, 주님의 권위 아래 무릎 꿇는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내게 허락하신 잔이다. 나는 이 환경이 싫지만,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고 허락하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순종이다. 말씀 앞에 순종이다. 내가 쓸 수 있는 칼은 필요 없다고 하신다. 칼집에 꽂으라고 하신다.
♡ 주님, 칼을 꽂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마시겠습니다. 주께서 세워주신 남편의 말에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