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방해하는)이기적인 그리스도인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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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13
2007-07-13 잠언 6:20-35 ‘(구원을 방해하는)이기적인 그리스도인’
오늘은 묵상을 하며 착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먼저, 무슨 말을 하기가 겁이 납니다.
말에 덕은 없을지언정, 보편적인 가치관에는 부합해야 하는데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사정없이 정죄하는
이기심의 경연장이 되어버린 이곳을 보면서
(자신의 유익 때문에)바쁜 그리스도인은 나쁜 그리스도인이고
(구원을 방해하는)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은 더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하나, 만약 아내가 누군가와 간음을 했으니
용서 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정말 끔찍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지금까지 나의 죄를 고백한 이후
아내와 아이들은 당연히 용서해주리라 생각했고
용서 후 나는 자유함을, 그들은 평상심을 되찾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나도 그들도 아니었습니다.
분이 나고 그들의 믿음 수준까지 들먹이며 정죄하는 죄만 또 지었습니다.
그렇다고 고백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슬픈 현실은 무지했던 내 삶의 결론이며
이제 정말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결단이 중요할 뿐입니다.
음녀에 대한 훈계가 계속 나오는데 오늘은 다른 죄와 비교까지 하며
육신의 정욕에 관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구체적으로 적시합니다.
악한 계집, 이방 계집 등 음녀는 음란해서
이들에 빠지면 재물이 명실되고 결국 생명까지 잃게 된다고 합니다.
배를 채우려고 훔치는 경우, 배상은 하되 멸시는 면할 수 있지만
쾌락을 더하려고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서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어 영혼이 망하게 됩니다.
도둑질의 경우, 배고파서 하는 것은 그래도 정상이 참작되고
음녀 중 창녀에 빠지면 재물을 잃고 건강을 잃어 생명이 단축되지만
남편이 있는 여자를 탐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 받지 못할 죄,
그래서 영혼이 망할 수밖에 없는 죄라고 합니다.
육신의 정욕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간통죄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많은 나라 중에도 간통은 이미 죄가 아니며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여성계나 시민단체가 있는데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성생활은 사적인 영역이어서 법으로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저변에는, 간통남에게는 관대하고
간통녀에게는 가혹했던 모순된 사회 통념이 있습니다.
모 집사님이 룸싸롱에 갔다가 2차를 가서 부인에게 죄 지은 것을
고백한 적이 있고 저도 이미 고백한 바 있지만,
남자는 바람을 피울 수 있고, 한 번 정도 실수로 치부하며
한 번의 바람은 가볍게 여기는 사회저변의 기류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있는 여자와의 간통 사건에 대한 고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남의 여자를 탐한 죄는 고백하기에도 민망한 죄임이 분명하지만
진정 죄의 회개를 위한 고백의 장이 이곳이라면
그러한 죄의 고백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체휼하는 마음과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는 어려운 일임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고백하는 자의 입장도 되어 보고 듣는 자의 입장도 되어보면서
그 일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 최소한 닮기를 소망하는 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죄의 고백은 생명 사건,
즉 부활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듭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무덤을 빠져 나오기 위한 첫 과정이 죄의 고백이고
그 고백에 체휼하는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은
무덤의 돌을 치우는 천사가 되라는,
그래서 구원을 함께 이루어가기에 힘쓰라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