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목요일
제목: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요한복음 14: 15-24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아버지와 예수님, 성령님의 친밀함에 감동이 된다. 게다가 그런 친밀함을 나와, 우리와 함께 나누고자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더욱 감격이다. 주님이 행하심을, 일하심을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내게 계속 말씀해주시는 은혜다. 나의 필요를 먼저 주님이 아시고 구하시겠다고 하신다. 따뜻한 사랑이시다. 성령님을 내가 알게 될 텐데 그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고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고와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겠고 세상과 달리 주님을 보리라 말씀하신다. 주의 사심과 부활은 내가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젠 그 먼 거리가 엄두가 안 난다. 몸이 피곤하다. 차라리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된다. 그렇지만 공동체가 함께하는 그 곳에 우리 주님이 계시기에 나도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적용을 한다. 몸이 10개면 좋겠다는 때가 이때다. 한 가지에 집중이 안 되고 나뉜다. 아~ 그러고 보니 숙제가 산적하다.
주의 계명,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주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신다. 주를 사랑하는 자가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라야 주께서도 사랑하여 나타내리라 말씀하신다. 그때에야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이 나와 함께 거처하겠다고 하신다. 그때에야 비로소 고아가 아닌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말로만이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찬양할 때 두 손 들고 감격하며 기도할 때 눈물이 나오고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인 줄 알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머리로 인정이 되고 아멘이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에 요동함이 없이 넉넉하게 품고 가는 것인 줄 알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헌금인 줄 알았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의 감동대로 표현하는 것인 줄 알았다.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매일 말씀 보는 것조차 흘리고 놓칠 때가 더 많고, 공동체의 예배 가운데 앉아는 있으면서도 졸 때가 있고 인식이 바뀌고 마음에 감동은 있으면서도 정작, 실제 적용은 못한다. 내 사랑은 ‘말’의 사랑 ‘생각’의 사랑이다. 오늘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를 사랑하면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게 나의 실상이다. 주님이 진단하시는 나의 실상이시다. 내 모습 그대로, 내 허울과 허물, 나의 악과 죄를 아심에도 나를 품고 먼저 사랑하여 오신 예수님이시지만 내게 원하시는 건 주를 사랑하는 고백이다. 말과 생각의 고백이 아니라 나의 행실로, 계명을 지킴으로 보이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평원지기님들이 나눠주시는 삶의 간증을 들으면서, 주님이 주신 환경에 순종하며 깨닫고 들린 말씀대로 지키며 가는 수고를 감당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감동이 된다. 내 이기적인 욕심으로 남편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지체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나의 한계와 바닥이 드러나는 사랑, 나의 본질인 악을 마주대한다. 그러자니 상대의 반응과 표현에 따라 달라지고 상대의 성숙함에 따라 나의 본질이 감춰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다. 결국 나의 근원이 문제임에도 때로는 상대의 미성숙함을 탓하고 원망하는 나의 악이다. 우리들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의 악과 죄를 보게 하심이 감사다. 자신이 드러나서 교만할 수가 없는 나를 마주대하니 감사다.
♡ 신우회 첫 모임, 주께서 주관하시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나 참석하겠다고 하시는 동료가 나눔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밝히 알고 주를 사랑하게 하소서
내 안에 주님의 말씀이 거하기 편안하도록 나의 악과 죄를 고백하며 무릎 꿇고 돌이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