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약전
작성자명 [이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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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05
저는 돈을 정말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돈을 사랑한 방법은 돈으로 당장 내눈에 즐거운 것들을 사고 내 육신에 즐거운 것들을 누리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는 것보다 이런 것들을 두고 두고 놓치지 않기 위해 돈 자체를 모아두고 돈을 의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그렇게 돈을 좋아하지 않게 보이는 교묘한 방법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용돈을 받으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한가지 하고... (영화를 본다든지 잡지책이나 책같은 것을 사보는 것들을 하는 것이었지요) 사고 싶은 것을 하나 사고... (예쁜 학용품같은 것을 샀었습니다) 나머지 돈은 또래에 비해서는 많이 저축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굉장히 절제를 잘하는 저였습니다. 이런 습관이 계속되어 믿음을 가지게 되어 십일조를 하는 것외에는 내가 쓸 수 있는 돈에서 많은 부분을 저축을 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직업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큰 돈을 모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습관 때문에 결혼을 하고서도 저축을 열심히 해서 결혼 몇 년만에 얼마간의 돈을 모으게 되었고 이것을 아시게 된 시어머님은 저를 알뜰하다고 극찬을 하시면서 보기와 다르다고... 돈에 대해서 정확하시고 무서우신 분이신데도 저는 급기야 이런 어머님의 인정을 얻어내었고 그 이후로는 돈에 대해서 만큼은 어머님이 저를 완전히 신뢰하는 데 까지 가셔서 제가 다 미안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저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저를 핍박하게 되는 고난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그렇게 돈을 사랑하다가 죽어서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되고 멸망하는 짐승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돈을 계속 모아서 더 큰 돈을 만들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멸망했을 것입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제가 돈을 향하여 달려갈 때마다 말씀으로 환경으로 막아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애지중지 모았던 돈을 친척언니에게 빌려주었었는데 부도로 그 돈을 못받게 되었습니다. 큐티를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한푼 두푼 마음을 담아 모은 돈이었기에 너무 괴로워서 한 삼일을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내 욕심사이에서 심히 갈등하다가 한 삼일만에 나의 죄가 보였고 하나님앞에서 그 돈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환경적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을 주님앞에서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서 이익을 챙길 수 있었기에 그 욕심 때문에 돈을 빌려주었던 나의 밑바닥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돈을 빌려준 목적은 거룩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 한번은 부동산에 밝은 이웃과 함께 여윳돈으로 부동산에 손을 대어볼려다가 큐티말씀이 계속해서 토지에 대한 성경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말씀들이라 도저히 아닌 것 같아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엔 너나 나나 다 조금씩 하고 있던 주식도 조금씩 재미를 보고 있었지만 말씀보다 주식시세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이건 아닌데 하던 차에 팔 시기를 잠간 놓치는 바람에 왕창 날리고는 딱 끊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겪고도 저의 돈에 대한 약전은 계속 되어 학원을 더 크게 할려고도 계획을 했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저의 돈에 대한 욕심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구원에 대한 확신과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은 더 커져 가서 한편으로는 남편이 주는 돈과 제가 버는 돈의 많은 부분을 선교헌금에 후원금에 지체들을 돕는데에 쓰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계속되는 고난을 통해 이미 많이 알아버린 하나님 나라 때문에 나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재물에 대한 것을 내려놓고 형제들의 생명의 구속을 위한 삶으로 완전히 옮겨가지도 못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고 일대일 양육을 통해서 이사야말씀을 나를 부르시는 말씀으로 듣게 되었고 당시 매일성경 본문이었던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서 육의 성전이 무너지고 새로운 영의 성전이 세워질 것을 약속의 말씀으로 받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기를 결단했을 때 남편이 부도가 나고 구속되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없어지게 되자 그야말로 말씀만 붙들고 다른이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겨보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형제의 영혼을 구속하는 것이 아주 미미한 보탬밖에 안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재물이 있고 풍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자긍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도요... 나대로는 지나도록 헌금을 하고 돈을 쓰는 것에 조심을 해도 의지하고 자긍하지 않기가 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허벅지를 꼬집으며 깨어있을려고 하던 것이 부도가 딱 나고 나니까 애쓸 필요도 없이 저절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정말 축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애쓰며 돈을 의지하지 않을려고 그 고생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어쨌든 돈이 있을 때는 두려웠던 많은 것들이 돈이 없어지니까 저절로 두려움이 제거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훨씬 담대해지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격상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도 힘든 저였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믿으라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심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저의 성품을 넘어서면서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재물을 의지하거나 풍부함을 자긍할 때는 결코 아무도 그 형제를 구속할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때인가 아굴의 잠언을 보면서 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지 아무리 머리를 써서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하고 깨달아지는 것을 넘어서서 확신이 되고 나의 삶으로 살게 되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런 구절뿐만이 아니라 학생시절 그냥 퀘스천 마크로만 두고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성경은 읽기가 즐겁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이 안되는 말들이 많구나라고 여길 수 밖에 없었던 그 답답함이 이젠 삶에서 깨어지고 망가지면서 그 오묘한 말들을 더 깨달아 갈 수 있게 된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이제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주님께 물질로 크게 내어놓을 것이 없어졌지만 날마다 남편을 아이들을 목장식구들을 보며 그 죽음을 들여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이 상황이 감사합니다.
예전에 내게 부러움을 보내고 사랑을 주었던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깨어지고 망가지는 저의 삶을 보며 이젠 내옆에 있기도 무섭다고들까지 하지만 저는 주님의 그 무덤앞에서 주님이 살아나시겠다는 그 말씀을 믿고 죽음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기다렸던 막달라 마리아의 그 심정을 압니다.
그녀의 기다림에 다른이들의 시선과 비난이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처럼
돈의 귀신에 사랑의 귀신에 공부의 귀신에 각종 귀신에 들렸던 저를 살려주신 주님의 그 사랑을 알기에 사랑하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은 보이는 것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캄캄한 무덤이고 도저히 주님이라도 열고 나올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꽉꽉 닫힌 돌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동안의 삶을 통해 말씀을 붙들고 죽었던 어떤 죽음에서도 주님이 살리셨던 것을 경험했기에 또 다시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어느곳에서 언제 살아나실지 저는 알 수가 없지만
남편인지 아이들인지 목장식구들인지 어디서든지 언제가 되든지
주님이 부활하실 것!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