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하여 목숨바쳐라. 자유는 그렇게 아름다워라
작성자명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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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05
잠 2:16-22
태어나면서 부터 사람은 소속감을 추구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삶의 발판을 삼아 뿌리를 내리게 된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인간을 한자로 보면 人間, 즉 사람 사이 를 말한다.
사람과 사람사이가 인간이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인간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소속감...
어려서
부모와의 소속감에 잘 성장하지 못한 아이는
애착장애라는 증세를 보인다.
아무 어른이나 따르든지,
아니면 오로지 자신의 부모만을 따르며 잠시의 부재도 견디지 못한다.
좀 크면
아이들은 부모보다는 친구들과의 소속감속에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왕따는
존재전체를 부정당할 수도 있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보다 더...
소년을, 그리고 소녀를 괴롭게 만드는 일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결혼하여 사람은 소속감의 절정에 달하게 된다.
결혼은 정신적, 육체적, 의지적 결합을 의미한다.
육체적 연합을 히브리어로 야다 라고 부른다.
야다 의 또 다른 의미는 안다 라는 의미라고 한다.
히브리어의 특징상 체험적으로 아는 것만을 아는 것으로 인정하는
그 나라의 사고 체계에서 온 말.
하나님은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여 성경을 쓰셨으리라...
우리는 그렇게 체험적으로 남편을 알고 그것을 연합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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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끊임없이 음녀에 대한 경고를 우리에게 준다.
왜 일까?
도덕법?!! 그러나 단지 도덕법만을?
성경은 도덕을 초월해 왔다.
예수님 족보에 오른 4명의 여인들만 생각해 보아도...,
게다가 예수님은
경건한 척하는 종교지도자들을 엄청나게 질타하신 데 비해서...,(독사의 자식들아!!!)
그를 따르는 죄인과 창녀들에게는 친구가 되어주셨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육체적인 죄보다
영적인 죄를 훨씬 더 크게 다루시는 것이 분명하다.
영적인 죄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교만 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매번 이렇게 음행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주시는 이유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음녀가 정말이지 인간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간이 되는 소속감을 헤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뿌리를 뒤흔들기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삶으로 만들고 말기 때문이다.
체험적으로 아는 인간이 많다고 생각해 보라!!!
나의 근간은 어디란 말인가??
현대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소속감을 박차고 나와
자유연예의 주창자가 되어버린 프로이드(그는 그렇게 자유로운 연애를 하지 못했다.)의
리비도 이론을 높이 기치로 내걸고
자신의 소속감을 이 곳, 저 곳에다가 나누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불휘기픈 나무가 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민들레 홀씨처럼 슬픈 영혼이 되어가는 것이다...
가정은 왜 지켜져야 하는가?
그곳은 인간 자신의 소속감의 근간이 되기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바로 선 을 뜻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 이라는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광고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과거에 우리 인간을 인간이도록 만들어주던
전통적인 가치관들이 깨어져 나가고 있다.
다만 지금 내가 원한다면...!! 이라는 잣대가
Feel so good~~! 라는 멋진 문구로 재포장되어
원하는대로 살아라고 우는 사자처럼 사람들을 흔들어 대고 있다.
인간 외부에서
사람이 원치않아도
양심에 호소하고 지성과 감성을 울리며
우리의 의지를 붙잡아 앉히던 그 무엇인가가 부정당하고 있다.
그리고 만물보다 부패 했다는 사람의 속으로부터 끌어내는 것을
선이라 부르며 그것에 따라 멋대로 멋~~지게 살아라고 강력하게 주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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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 선택을 우리의 몫으로 돌리셨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상대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유없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천사에게도 사단에게도 주시지 않은 고귀한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 자유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고, 타락해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다.
왜일까...?
글쎄...,
하나님은 진실되고 참된 의미에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분은 자신의 피와 살을 다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자유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가운데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말씀을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돌려받은 자유를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
선악과는
먹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구사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나의 사랑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나무였다.
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자유란 의미가 없는 것이며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더욱 굳건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있는 자유를 남용해 버리면
자유로워지기는 커녕 더욱 노예로 전락해 버린다.
그것이 성경이 강력하게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므로 신적인 자아가 있어서
떡으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지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양심을 일깨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