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기에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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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05
2007-07-05 잠언 2:16-22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기에’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병영 체험 차 아버지 나라를 찾은 미국에서 태어난 12살 조카를 어제 만났습니다.
서너 살 때 보고 이번에 본 것인데 꼭 안아줄 때 내 살붙이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식이 최고라지만 눈매부터 도톰한 입술, 귓불까지 깨물어주고 싶었습니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따지면 솔로몬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겁니다.
솔로몬이나 그 아들 르호보암은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지만
도덕적으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위해 3,000개의 잠언을 썼다는 솔로몬은 국가를 강성하게 했지만
가정적으로는 자식들에게 할 말이 많지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출생 과정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의 교훈도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나온 가슴 아픈 가족사의 산물일지 모릅니다.
그의 어머니 밧세바는 이방 사람 헷 족속 출신이고 남편인 우리야가 전쟁에 나갔을 때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해도 다윗의 관음증을 유발시켜 다윗과 통간하고, 그것도 모자라
죄라면 예쁜 아내 둔 죄 밖에 없는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런 가족사를 모를 리 없는 솔로몬 역시 이방 여인들을 마구잡이로 취합니다.
국가 부흥을 위한 전략적 결혼의 성격이 크다고 해도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그가 자식을 위해 이런 교훈을 하는 걸 보면 신파극의 한 장면 같습니다.
‘애비는 이렇게 살아도 너만은....’
불과 몇 년 전 저의 주제가였습니다.
언젠가 주일 아침 아내와 아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저는 오픈을 준비하던 식당으로 가서 개업 준비를 하려는데
아들이 볼 멘 소리로 주일은 지켜야 한다며 아빠 지옥 갈 까봐 겁난다는 소리에
이게 다 가족을 위한 거라며 화를 버럭 낸 적이 있습니다.
요즘 겉옷을 바꿔 입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영 말발이 서질 않습니다.
현재의 경건한 모습 위에 오버랩되는 과거의 타락한 모습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요셉보다 며느리와 통간한 유다를 예수님의 족보에 올리신 하나님의 구속사는
죄의 대물림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더러운 곳을 가리지 않으심으로 나를 위로하시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자식은 자기 삶의 결론이다’
그렇게 착하다고 칭찬이 자자하고 제가 봐도 품질이 좋은 아들 녀석이
아비에게 무시당하며 평생을 살아 온 어미에게 어느 순간 혈기를 부리며
무시하는 모습을 보일 때, 전에는 고함으로 혼을 내주었지만
어떤 사건이라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요즘은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는 목사님의 주제가를
절망적으로 되뇌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가끔 바쁘실 때는 있겠지만
절대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배워가는 요즈음
불순종의 시간을 정확히 연단의 시간으로 계산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연단의 시간이기에 더 따뜻이 품어 주시는 그 품이 너무 정겹습니다.
어릴 적 느끼던 선친의 품을 느끼게 해주시니 지금 이 시간이
영원히 멈춰지면 어떠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눈앞에 할 일이 태산이고 이루어 갈 구원의 여정이 아득한데
마냥 안식을 누리게 하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이라 생각하며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아뢸 내 죄를 챙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