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의 기도
작성자명 [윤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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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03
잠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ㅇ 그냥 지나치던 위 말씀이 무엇인가 찝찝(?) 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제 죄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당근 100% 죄인인 저인데, 저 말씀 속에 제가 지금 못 깨닫는 죄가 있지 않겠습니까, 가르쳐 주십시요, 고치겠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제가 근무하였던 루마니아에서 아이들 손 잡고 늘상 하던 취침 기도 내용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아 그렇군요, 지금의 저의 아이들이 세상적으로는 착하고 밝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말씀이 견고히 뿌리 내리지 않는 이유의 근원중의 하나가 저의 기도 때문이겠군요.
ㅇ 저의 선친이 국민학교 때 돌아가셔서 제가 고등학교 때 많이 힘들고 방황할 때, 아버지가 많이 그리웠었습니다. 내가 잘했건 못했건 이렇다 격려든 훈계든 한 마디 해 주실 수 있는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이 마음 한 편에 빈 공간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당신은 어디에’ 같은 글도 써 보고.
ㅇ 1997, 1998년 2년을 우리 가족 모두, 제가 근무하던 루마니아의 변방 국경도시인 망갈리아에서 살았습니다. 친구도 이모도 할머니도 없는 외국에서 아이들이 안쓰러워 가족간의 정은 더 깊어져서 감사했던 기간 중에
저의 일과 중의 하나는 아이들 손 잡고 취침 기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큰 아이 10, 11살, 둘째 7, 8살, 자기 전에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주고,
그런데 지금 깨닫고 고백하는저의 죄는그 다음이었습니다. 기도하고는 덧 붙이기를
ㅇ ‘ 태현아, 태성아, 너희들 하고 싶은 것 해라 아빠가 도와줄 께’
저는 요즘도 위의 기도 뒤의 덧붙임을 제가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잘한 것으로 자랑으로 생각했었고 가끔가다 아이들과 루마니아 이야기 할때도 좋은 아빠 임을 은근히 내 보이며 기분 좋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니, 한 평생 살아가는 길이 푸른 초장과 더불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험난한 세상 살이인데,
어찌 어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라고 기도했다니 , 이런 착각도 유분수지
또 더하여 100% 죄인인 내가 무엇 진정으로 도와 줄 수 있다고, 도와줄 건덕지라도 있다고, 겨우 세끼 밥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것 뿐인데, 이 마저도 하나님 주신 것으로 하는것인데,
그 기도 먹고 잠들면서 그 영혼들이 커 갔을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구나, 내 마음껏 살아도 되는 거구나 하는,
장미빛 거짓 환상을 보게 하였고
어린 시절에는 크고 능력 있어 보였을 아빠가, 나중에 무엇이든 도와 줄 것이라는 착각을 갖게 하였을 것 같습니다.
저의 죄는 아직도 질기게 남아 있는, 좋은 사람, 괜챦은 사람이라는 거짓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번 고백을 계기로 내가 벌레 만도 못하고 구더기만도 못한 흉악한 죄인이고 나의 모든 것이 배설물보다도 못하다는 깨달음과 고백을 주실 하나님의 때가 있기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드립니다.
그래도 기도 한 뒤에 덧붙인 것 아니냐고 스스로 정당성을 찾아 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 경외와 기도가 본질이 아니었고,
제 속의 죄는 하나님 없이도 너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저를 유혹하였고,
또 여기에 속아 넘어갔던 저의 죄된 자아는
아이들에게 하나님 없이도, 또는 장식품으로 폼으로 하나님을 앞에 그럴듯하게 내세우고
‘ 내 인생 내 것, 내 뜻대로 사는 거야’ 인간 중심 인본주의를 가르친 것 같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교묘하고 교활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이제 이해가 조금 됩니다
지금의 저의 두 아이들이 인간적으로는 솔직하고 착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의리있고 윗 분들 선생님들로부터도 인간적으로 괜챦다고 좋은 녀석들이라고 평가 받으면서
첫째는 과대표도, 학생회 간부도 하고, 둘째는 센터내 아이들 대상으로 심리 면접한 결과, 가장 같이 있고 싶은 친구’ 였다고 해서
저도 그것을 다행으로 자랑으로 여기며, 아비보다 낫다 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기 까지 하는데, 말씀 관점에서 보면
아직 신앙의 뿌리가 견고히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큰 아이는 아직도 큐티를 매일 하지 않는 듯 하고
(이제 생각해 보니,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훈계인데, 착한 아빠로서 교양있게 가볍게터치만 하고 따끔하게는 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아, 너 다음에 만나면 보자, ….)
둘째는 우리들교회 출석은 하는데 아직 중고등부 예배는 서먹서먹한 듯하여 참석하지 않고, 엄마와 대예배 보는 수준입니다.
이제 제가 루마니아에서 아이들에게 기도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다음과 같은 기도로 취침 기도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태현이 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 태성이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
우리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내 인생 내 뜻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 가운데 각 자에게 주신 인생임을, 각 자 인생이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 지기 위해 사는 인생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루 하루의 삶 가운데 무시와 수치 당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예수님 본 받아서 수치 무시 잘 당하고 나의 죄된 자아 잘 죽일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빠진 나의 성공은 나의 착함은 나의 잘남은 앙꼬 없는 찐빵임을, 찐빵도 못 되고 흙덩이임을, 흙덩이도 아니고 나를 죽이는 독임을 깨닫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시편 44편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목사님 말씀이
아버지, 무엇인가 얇은 막 하나 벗어진 것 같은 오늘 아침, 깨달음 주심 감사합니다.
저의 죄된 자아의 기록들, 거짓과 가식과 위선의 죄악들 천 가지이든 만 가지이든 보여 주시옵소서, 저의 까막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으니 부디 불쌍히 보시고 보이고 깨닫고 그리고 돌이키도록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