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 28~44'
40년이 넘도록 수백번을 듣고 읽었던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오늘 본문 '나사로의 부활'를 통해 성령하나님이
가장 근본적인 사건을 해석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2번째 만난 여집사님에 대한 고난과 전쟁의 사건이 해석되지 않아
나를 죽이고, 나를 죽게 만들어 무덤에 가둔 사람이 바로 2번째 만난 부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만난 부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차에 치여 죽던지, 아니면 내가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고
그 미움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폭언과 폭력으로 바뀌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피흘리는 전쟁을 하였습니다.
10년동안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교회 온지 3년이 넘도록 해석되지 않아 목장에서도 분노로 미워하며 지적질을 하며 싸웠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사건인 해석되지 않아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저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나의 무덤은 미움과 분노였습니다.
그 무덤에서 썩은냄새를 풍기며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마리아를 부르시듯 내 옆에 있는 부인집사를 우리들교회로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였던 부인집사는 예수님앞에 정말 눈물로 저를 위하여 간구하였습니다.
내가 무덤에서 썩은냄새를 뿜어내며 분노와 악행을 행할 때
저를 위해 예수님앞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리아였던 부인집사의 눈물을 보시고, 예수님도 함께 눈물을 흘리시며
나의 무덤에 친히 찾아오셔서 '깊은 상처, 미움, 분노, 음란'의 돌을 예배와 김양재목사님의 말씀과 큐티
그리고 목장의 나눔을 통해 그 돌을 옮기니 목사님의 설교로 돌이 옮겨지고,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남수야, 나오라.'부르시니 수족을 베로 동인 자존감을 높이시고,
얼굴의 수건인 열등감을 풀어주시며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구원의 산증인으로 세우시기 전에 나의 해석되지 않는 대상에게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고 싶고, 해석되지 않는 미움의 대상은 바로 두번째 만난 부인집사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도 적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잘 참다가도 다시 요동하여 분노가 일어나서
미움으로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앞에 간구한 여인 마리아가 바로 '옆에 있던 두번째 만난 죽이고 싶은 미움의 대상인 부인집사님이었습니다.'
그 눈물을 보시고, 나를 무덤에서 살아나게 하신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무덤에서 죽은자로 썩은냄새가 날 때 (정말 3년전에는 난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위해
눈물을 예수님께 보이며, 기도한 사람은 조강지처도 아니요, 아버지도 아니요, 형제도 아니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옆에 원수같은 세상에서 가장 미워했던 여집사였습니다.
그가 바로 '마리아'였다고 오늘 말씀으로 해석하여 주시니
오늘 아침 '마리아'였던 여집사님에게 찾아가 무릎을 끊고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미움이 해석되니 진정성 있는 회개와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왜? 이제야 사건이 해석되었는지? 난 바보 천지와 같다.
나를 용서해라, 내가 당신을 내 죄악의 근본이요, 나를 죽이는 악마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미워하고
욕하고, 폭행하고, 나가서 다른 여자로 당신을 괴롭히고, 수치를 주고, 당신을 죽이려 했다.
당신을 마리아로 부르시고, 당신의 눈물로 내가 무덤에서 살아났는데, 내가 당신을 미워했다.
나를 용서해라. 오직 인간의 사랑은 무덤일 뿐이고, 예수님의 사랑만이 부활이요, 생명인데
내가 당신을 미워함으로 분노가 있어 무덤에 있었다. 나를 무덤에서 부활할 수 있게 눈물로 기도해 준
마리아가 바로 당신인데 내가 무지했고, 악했다. 나를 용서해주세요.
나의 회개 눈물로 당신의 발을 씻기고, 또 씻기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 죄를 구합니다.'
라고 속죄제를 아침에 드렸습니다.
나의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대성통곡을 하며 '꺼억, 꺼억...' 나의 악한 미움을 토해내고,
내 냄새나는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왜? 내가 사람을 미워했나? 왜? 이제야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를 깨달았나?
40년이 넘도록 난 무지하였습니다.
지식이 없어 무식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해석되지 않으니 무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사랑의 대상과 구원의 대상만이 있을 뿐이지......
미움의 대상은 없음을 알고 이제는 미움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겠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나를 살리신 예수님 곧 구원의 산증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구원의 증거가 되어 나처럼 무덤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돌을 옮기는 목자의 삶을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