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화요일
제목: 주여 와서 보옵소서
요한복음 11:28-44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동네에서 친구들끼리 놀 때, 그 동생이 맞고 우는 걸 보고는 신나게 웃고 떠들던 후배는 갑자기 동생처럼 울면서 동생을 때린 남자아이에게 달려드는 걸 봤다. 나는 참 무정했었나 보다. 동생이 맞고 우는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나도 덩달아 울며 달려들지는 못하였을 것이란 생각을 그때도 지금도 한다.
아이들도 그러는 것 같다. 시험 동영상에서 봤던 건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이 앞에서 엄마가 우는 표정을 짓게 되면 아이는 엄마를 따라 삐쭉삐죽 슬픔을 표시하며 울려고 한다. 나도 부모가 되고 이제 어른이 되고... 공감인지 동감인지 아들이 고통받으면 눈물이 나고, 간증하는 지체들의 눈물에 눈물이 나고, 목사님 우는 모습에 또 눈물이 나고, 오늘은 급기야 예수님까지 눈물을 지으시는데... 내 마음에도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심정이 울려 퍼져 눈물이 난다. 그게 공동체인가 보다. 함께한다는 것은 힘도 되지만 내가 감내하고 치러야 할 값은 분명히 있다. 지체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우리들, 예수님 마음이 아프시니 아픈 게 당연하다.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그 말에 급히 일어나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아뢰는 마리아나 무덤에 묻혀 나흘이나 지난 후에도 예수님의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는 그 말씀에 반응하여 수족이 베로 동인 채 나오는 나사로! 죽은 자나 산 자나 예수님이 부르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여 따른다. 말씀이 내 안에 없어 죽었을 지라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 산자로 있을지라도 내가 드릴 최소한의 순종은 부름에 응답하는 것임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하다. 내 환경을 보지 않고, 주의 음성에만 반응하며 순종하는 모습은 내가 적용해야 할 몫이다.
마리아도 마르다도 내가 보기에는 똑같이 예수님께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다르다. 그 안에 믿음을 보시는 주님, 예수님의 역사는 믿게 하려 하심이라는 목표에서 언제나 벗어나지 않으신다. 마르다에게는 “네가 믿느냐” 하실 때, 마리아에게는 “어디 두었느냐” 물으신다. 거기에 대한 대답도 마리아처럼 나도 “주여 와서 보옵소서”가 되기를 원한다. “주여 오셔서 보옵소서.”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마리아가 주께 드리는 “주여 와서 보옵소서”에는 마리아의 믿음이 담겨있고 예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감사가 담겨있다. “이제라도 오셔서 감사하고, 이제라도 오셨으니 와서 보시면 나사로도 저도 기쁨이고 영광이겠나이다.” 그 마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린다.
♡ 주여 와서 보옵소서! 내 환경을 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최소한의 순종으로 말씀에 날마다 반응하게 하소서. 내 자리에서 일어나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아뢰겠나이다.
다른 사람의 심정을 공감할 마음 주시옵소서. 그 심정을 헤아리는 가슴의 말을 사용하게 하옵소서.
아들과 남편에게....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주고 위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