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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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7.02
2007-07-02 잠언 1:8-19 ‘내 아들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한 달 동안
우열반 배치를 위한 입학 전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나는 여전한 방식으로 골방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시골 학교에서 도시 학교로 전학가서도 밀리지 않았고
비록 추첨이지만 명문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
선친이 그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중학교 입학식 날 새벽에 선친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 아들아, 고등학교는 경기고 가야지?’
그러나 동갑내기 대통령 아들 때문에 고교 입시가 폐지되고
고향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선친의 꿈은 의사로 바뀌었습니다.
내 아들아, 돈 잘 버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아비 어미의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가치관 속에 형성된 자신들의 꿈을 자식이 이루어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내 자식만 잘 되어야 합니다.
눈이 멀고 귀가 막혀 아무 말도 안 들립니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기도 하고
대치동, 강남을 띄운 숨은 공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속사의 ‘내 아들아’는 주제가 좀 다릅니다.
내 아들아 -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세속사나 구속사나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일하지만
세속사는 작은 이익은 버리되 큰 이익을 탐하라 하고
구속사는 이익을 탐하면 생명을 잃는다고 합니다.
세속사는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구속사는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속사는 끝없이 ‘하라’를 외치면서도 끝이 있지만
구속사는 가금씩 ‘하지 말라’고 하지만 끝이 없습니다.
선친도 박대통령도 세속사 속에서 동갑내기 자식을 키우며
한 사람은 자식을 위해 국가의 교육제도까지 뜯어 고쳤고
한 사람은 자식을 위해 제도에 순응하며 ‘하라’를 외치다가
그 자식 잘 되는 꼴도 못 보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분은 지금 서로 다른 곳에 계시겠지만
두 자식은 오늘도 세속사의 격랑을 헤치며
한자식은 늦은 나이에 망했지만 구속사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고
또 한 자식은 이른 나이에 망가졌지만 뒤늦게 가정을 꾸려
자식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소식입니다.
아버지 품에 안겨 아버지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두 가정에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임하길 간구합니다.
지난날 고난이 축복의 통로였음을 깨닫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