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주일
제목: 들으시고 이르시되
요한복음 11:1-16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본래 사랑하셨던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이틀을 더 유하신다. 나사로가 죽기까지 기다리셨다가 죽은 이후에 살리려고 나사로에게 가자 하시며 이끄신다. 사건을 맞이하셨을 때, 분별하셔서 적절한 때에 맞춰 제자들을 믿게 하기 위한 사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사건이 되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지난 주 말씀처럼 사건을 맞이했을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렌즈로 통찰하고 있는가? 한 마디로 NO! 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씀 듣는 공동체에서 들으며 묻고 갈 수 있어 안심이 되는 것이 달라졌을 뿐 말씀에 대해서도 민감하지 못하고 통찰력도 없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가. 이 곳에 속해있다는 것이, 또 들을 수 있는 환경인 것이.
나를 본래 사랑하셨던 주님, 하나님의 때가 가장 최선의 때임을 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나와 내게 속한 사람들에게 믿음을 얻게 하기 위한 사건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까지 기다리시는 주님을 만나니 더 없이 감사하다. 나사로가 죽기까지 기다리셨듯이 내가 죽기까지 기다리시는 주님이시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죽기까지 아파야 하고 죽기까지 고되고 고통도 겪어야 한다. 그게 나를 본래 사랑하셨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처방이라면 마땅히 견뎌야 할 내 몫이다.
아들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걸 보는 게 아쉽고 속상하고 괴롭다. 방학내내 했다는 게 예비 중학 1강 근처에서 멈춰져 있다.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습관 형성을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한 내 삶의 결론이지만, 그걸 배우라고 보낸 학원에서 배운 게 없다는 게 생색이 난다. 돈이 아깝다. 죽을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죽을까 두려워하는 나다. 마리아와 마르다도 나사로가 죽을까 예수님께 급히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어서 와서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 그런데도 아직껏 만져주지 않으시는 것 같이 보여지는 건 만지지 않아야 할 때이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겠는가? 하나님이 내 말을 듣지 않으셨겠는가? 지금, 내가 할 것은 잠잠히 기다리며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 하고, 아파야 한다면 아파야 하고... 주님이 내게 주신 내 몫을 감당하면 된다. 내 사건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는지 하나님이 하시는 걸 지켜보며 견디면 된다. 그걸 알게 하시니 속이 시원하다. 아들의 빈둥거리는 일상에 내가 요동하지 않을 수 있겠다.
예수님이 내 말을 듣고 이르셨다는 그 말이 감동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주님이 들으셨고 주님이 기다리신다. 나는 통찰력이 없고 지혜가 없어서 모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장 적기를 주님은 아신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도마는 그에게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 듯 보이지만, 죽으러 가자는 말씀으로 듣고도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가겠다고 확신하는 도마의 모습이 참 예쁘다. 꼭 우리 모습 같다. 내가 이해한대로 적용하지만 결국 그게 잘못 이해한 말일지라도 직접 가서 보면 알게 하시는 건 주님이시니까. 큐티로 날마다 사는 우리들 모습 같다. 그래서 더욱 안심이 되고 감사가 된다. 말씀 따라 간다는 것, 예수님과 함께 간다는 것.... 비록 오늘은 안 맞는 적용일지라도, 주님이 또 말씀해주실 거니까~
♡내가 맞이하는 작은 사건들 하나 하나, 주께 아뢸 때 주님이 들으심에 감사합니다. 가장 적절한 시기를 아시는 주님의 처방에 요동하지 않고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도 천국을 누리며 살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내 믿음이 생기고 내게 속한 사람들의 믿음이 생기도록 죽기까지 기다리시는 주님의 처방에 순종합니다.
아들에게 요동하지 않고 내 믿음이 생기는 구원의 사건이 되도록, 잘 쓰임받도록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