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담당할 수 있는 언약의 무게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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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27
묵상 귀절-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며칠째 살인 더위-
이런 살인 더위일지라고
하나님의 한 시내를 상상하며 그 조용히 흐르는 물줄기에 내 영혼을 던지는 의미에서
오늘에 주어진 말씀을 헤아려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남편이 공예배시 드리는 기도 중 제 영혼에 깊은 자각을 주었던 기도 내용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서 우리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발이 서있지
못한 곳에서 우리의 눈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라는 기도를 생각나게 하는 아침이네요
제가 이곳 큐티엠들과 6/25를 보내며 느낀 점이 있다면 저마다 자신의 반경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갇히여 조국의 역사를 주님 주시는 말씀속에서 다시한번 기경하고자하는 영혼의 몸부림을 찾아 볼 수 없어 매우 섭섭했답니다
행여 조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려면 나라의 녹을 먹으며 나라가 주는 각양각색의 자리중 그 어느 한 자리를 대변할 수 있는 명함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의 돌이킴 을 통해 한 나라의 국운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묵상하는 영혼들이라면 결코 나라의 흥망성쇠앞에 침묵이나 방관이나 여타 무슨 국사에도 일관된 무반응으로 나오는 것은 참으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란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 한 사람에게 엄청난 언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위에 은혜를 더해가시며 결국 한 국가를 창립하십니다
그 후
이스라엘이란 한 국가의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말씀으로 간섭하시는 하나님과
간섭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망국의 치욕과 설움가운데 던짐받는 국체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 성 중건과 성전 재건이란 큰 명제를 놓고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는 역사적인 일들을 유감없이 기록한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나라의 구원과 한 개인의 구원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던 시절이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이였습니다
물론 구약 선지자들도 각자 다 따로 따로 십자가상의 주님을 바라보며 통곡하는가운데 자기 구원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하여 국가적인 구원관보다는 개인 구원관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복음은 여전히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글쎄
아침부터 왜 이리 거창한 말들을 떠올려야하는지.............
울 하나님 섬세하시다하여 결코 그 거창함, 그 광활함을 배제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걸 아는 자로
나 역시 섬세함으로 말하라면 한 가지를 놓고 한 장이 되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만큼 자잘한 것들을 수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것을 보지 않는다면 우린 보다 더 큰 것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내 소중하게 여기는 작고 작은 삶의 반경들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온 우주를 상징하는 큰 산과 땅과 바다 등등과 더불어 만군의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동시에 그 만군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이 동일한 분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양면성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큰 것을 말해도
작은 것을 말해도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저 그렇게 어울리는 산에 있음
산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고
바다에 있으면 바다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고
땅에 있으면 땅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있으면 야곱에게 어울리고 사람이고 싶습니다
제 남편 총각시절 저와 연애할 때(중매해서 연애함)
절 보자마자 자신은 야곱이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보다 5살 연상인탓에 훨씬 성숙하더라고요
그 야곱에게 어울리기 위해 레아 라헬 그리고 그 두 시종처럼 살았네요.ㅎㅎㅎㅎ
오늘
시인은 8절에서 하나님의 행적을 보기 위해 와서 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래 한번 상상속에 날개를 펴 가보았더니 온 땅이 황무지로 변한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 황무지가 바로 하나님의 행적이라는 것입니다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아무리 옥토로 만들려해도 하나님을 쓸모없는 황무지처럼 생각하여 제외시킨 삶은 결국
황무지가 된다는 것을 봅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보는 중국과 북한의 차이점이 바로 중국의 비옥한 땅과는 놀랍도록 대조적인 북한의 황폐된 삼림이라 하지요
우리 조국의 땅끝이라 할 수 있는 그 땅을 향해 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사이
그렇게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전쟁을 쉬게 함심이여 - 여기 쉬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쉬비트 (* )는 일을 그만두다 , 일에서 손을 놓다 를 뜻하 솨바트 (* )의 분사형인데, 이러한 형태는 행동(동작)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이러한 모습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평화의 왕국이 온 땅에 정착될 때까지, 즉 미래 그 어느 시점까지 그 섭리는 계속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소망은 이곳보다도 사 2:4 ; 미 4:3 등에 더욱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한편, 이러한 소망 뒤에 메시야의 평화로운 통치에 대한 기대의 묘사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네이버에서 펌)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그분께서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듯이
나의 조국을 택하사 일하고 계신다는 것에 한없는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