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어찌하여/시43편 얼마 전에 6월30일까지 한국쉐링에 근무한다고 사인했는데
제대 말년에 빡빡 기는 내 신세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작정하고 휴가를 냈습니다.
마침, 아이들이 놀토여서 함께 영화나 한편 봐야지 했는데
내속을 알 턱이 없는 3명의 여자가 슈렉을 선택하는 바람에
김 샌 기분으로 나 홀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pm8시20분 표를 사놓고 궁시렁거리다가
뜻밖에 지인을 만나 1시간가량을 잘 떼웠으니
그래도 오늘 일진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닌가 봅니다.
지난주 울 교회 목사님이 설교 서두에
밀양 은 교회에 대한 세상의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슬픈 영화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2시간20분의 러닝 타임 내내, 과연 이 창동감독이
그리스도인일까, 아닐까를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그도 나처럼
지금 하나님께 버팅기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애(전 도연)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오는 길에
차가 고장이 났고 고장 난 차를 고쳐주러 온 카센터 사장 종찬(송 강호)을 만납니다.
신애는 과거에도 아버지와 불화했고 피아노 공부를 후원받지 못했으며
남편의 교통사고에 연거퍼 아들마저 유괴당해 죽게 되는 나오미 같은 여자입니다.
스토리 구성은 대충 밀양으로 간다―산다―아들이 유괴 당한다―
기독교에 감화돼 범인을 용서한다―신에게 분노하여 미친다―치료받고 퇴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단 영화를 본 내 소감은 교회에 대하여 편협된 세상의 시각이 있긴 하지만
지금껏 나온 어떤 영화보다 프로테스탄트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애에게 닥친 불행에 종파와 상관없이 교회가 구원의 통로가 되어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유괴범으로 부터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도 신애와 함께 쓰러졌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호하면 안 되고
안보일수록 더 이성적이고 최대한 상식적이어야 하는데
아,
이건 아닙니다.
아마도 신애는 신유집회 때 오열하는 것으로 한풀이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역모임에 나가고 길거리 찬양도 나갔지만
누구도 자신에게 닥친 사건을 말씀(혹은 이성)으로 해석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신의 침묵에 대하여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하여 믿으려고 애쓰지도 않겠습니다.
엔딩에서 신애의 머리칼처럼 삐죽삐죽 못난 물건이 나(我)라면
제발 내 맘대로 살게 그냥 냅두라고 말하렵니다.
우리에게 남은 건, 반항하는 일뿐입니다.
신애는 자해로,나는 냉소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남편이 죽고 아들마저 죽어버린 모압여인에게 밀양이 되어 주셨던 주님,
나는 교회의 부조리나 악에 대하여 말할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지금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을 만나 주저앉아 울고 싶지만,
주께서 나의 보혜사가 되어달라고 말할 수 없는 내 상황을 어찌하나이까,
오 주여, 내 낙심과 불안을 잠재우시고
주께서 나의 힘(밀양)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2007.6.23/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