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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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22
김영환님,
상대방의 입장을 나름대로 생각하시고 답변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어떤 답변을 받았건 그 답변이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느껴지면
비록 그 답변이 나를 오해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답변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지도 않으며
나를 오해한다고해서 그 상대방에게 미운 생각이 들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이 밉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심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상대방 앞에서만큼은 진심이 되어지고
진심이 되어 하는 말은 그 말이 어떤 표현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 말에는 거짓이 들어있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이 들어있지 않다면 누구든지 그 말이 마음에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리면 그 말이 믿어지고,
믿어지면 그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과 연결되어져서 오해로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그때부터 갈라져있던 두 마음은 하나로 연합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부끄러움까지 내어놓고 저를 권면하시는 님의 답변에서
저도 그것이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이 느껴지므로
비록 님의 답변이 저를 오해하는 데서 나온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 생각으로 지금 제 마음이 상하지도 않으며 님에게 미운 생각이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님의 답변에 대한 저의 답변은 님 앞에서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니
지금부터 드리는 저의 말씀에는 거짓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20 여년동안 제가 세상에서 동성애자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그로인해 그동안 제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의 모습에 대하여 비난과 멸시를 서슴치 않았지만
그러나 그 비난과 멸시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직접 와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 여년동안 우리 주위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에 대하여 직접 얼굴을 붉히고 옆눈으로 흘기며
마음을 찌르는 심한 말로 우리를 그들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조금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지만 이내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했으며
그러나 그들은 그 호기심을 마음에 감추고 그들과 다른 우리의 모습을 마치 눈치도 채지 못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와 함께 어울렸습니다.
그렇게 어울려 지내다보면
그들은 이내 그들 마음 속에 몰래 품은 호기심은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삶을 막 내어놓습니다.
그들의 삶이 우리들교회에서 다양하게 오픈되어지는
참으로 환란 당하고 빚지고 고통받는 그 삶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대부분 교회에서는 서로 포장한다고 지체들끼리 서로 내어놓고 나누지도 못하고 꼭꼭 숨기는 것을
우리들교회에서는 다 오픈해서 나눈다고 세상에서 이런 곳이 어디있냐고 자랑스러워들 하지만
그들은 어쩐지 우리 앞에서는 자기들의 삶을 포장해서 숨기지도 않고
그들의 고통하는 마음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보면서 저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들에게 예수님만 있으면
그 고통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곧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가벼운 고통이 될 텐데
그들이 주님이 없으므로 참으로 자신을 단단히 옥죄는 그 굴레에서 간단히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단지 고통만을 잊고자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저 술로, 노래방으로 위안을 받으려 했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어도 가족끼리 갖가지 마음이 갈라져 있는 그들의 영혼은
참으로 귀신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렇게 황폐화된 영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저는 그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죄인 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 죄와 상관없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으로 그들은 알고 있는데
그런 그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죄인 된 꼴을 하고서 예수 믿으라고 말한다면,
그들에게 그 말이 들리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은 오히려 제 말을 가증히 여기고 저를 비웃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더욱 그 말을 못했던 것은 제가 그 모습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전한다면
그들은 저보다 오히려 예수님이 더 이상한 예수님으로 비춰지게 될 것만 같았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제 스스로가 예수님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성애가 제일 큰 죄라고 온 세상이 믿는 그 믿음을 그들도 가지고 있는데
제가 무슨 수로 그들의 믿음을 뚫고 우리의 죄 모습이 단지 모습일 뿐 우리 자체가 그 모습은 아니라고
그들에게 우리의 진실을 증명해보이며 예수를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의 꼴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꼴로 되어있는 까닭에
마음놓고 자기들의 삶과 그 마음을 다 털어 놓는 그들 앞에서
저는 제가 예수 믿는다는 사실 조차도 그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먼저 자기의 정체부터 내어놓고 대화는 거기서 시작이 되는 것인데
동네에서 줄곧 장사를 한 까닭에 우리의 정체는 동네에서 거의 다 오픈되어있었는데도
저는 그들의 짐짓 모르는 척 해주는 동성애자로서의 저의 정체와
체험없이는 도저히 제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예수 믿는 저의 정체를 그들 앞에 내어놓을 수가 없어서
저는 언제나 그들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쏟아놓는 그들의 마음과 그저 눈에 보이는 서로의 생활만을 가지고
그들과의 대화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세상에서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예수 믿는 속정체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4 대째 예수를 믿는 우리 가족들과 친적들이 있었지만
그들과는 예수 믿는 속정체로는 꺼리김없이 서로 통할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짐짓 모른 척 해준 우리의 겉정체로는 결코 통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과도 온전한 관계가 될 수 없었고
또 우리에게 우리의 동성애자적인 겉정체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는
박국진씨의 어릴 때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서울에 있고 20 년이 넘게 우리는 대구에 있어
어쩌다 전화연락만 할뿐 잦은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관계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쩌다 그들을 만난다 하더라고 해도
세상에서 제일 죄인 된 꼴을 하고 있는 서로의 모습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것만 같아
서로가 민망한 까닭에 가능한 한 그 마음이 틀킬 만한 대화는 서로 피해갔기 때문에
동성애자로서 같은 겉정체를 가진 그들과도 활발한 소통을 가질 수 없었던 우리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와도 마음의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다고 해도
그 가운데 마음으로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있을 수 없다면
그것은 진실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동안 20 여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도 마음의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까닭에
내 마음에 흡족함이 될 수 없는 그 사람들을 별로 찾아가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짐짓 모른 척해도 항상 만나면 잊고 있던 호기심이 속에서 다시 발동하는 그들의 시선이 싫어서
그들로부터 제 스스로 나를 차단시키고 그들에게서 멀어져서 저는 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
틈만 나면 주위 사람들을 찾아가는 박국진씨와는 달리
저는 바깥 일과 집안 일, 오직 그 일에만 매달려 온 마음과 힘을 다 쏟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돈 없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가리개도 없을 것이므로
미래를 위한 돈의 필요성을 항상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시간 많고 마음 비어있는 제게 무엇보다 그 일이라는 것은
그 마음을 의지할 하나의 대상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재미있게 일했고,
그에 따라 늘어나는 통장을 보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일한 뒤에 세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미래란
그저 우리 육신을 위한 집, 그 외엔 아무 것도 있을 것이 없다는 깊은 절망감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예쁘게 치장한 집이라 할지라도
사람 하나 없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곳은
그야말로 내부를 예쁘게 치장한 예쁜무덤일 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무덤만을 바라보며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그 사람을 죽지 않고 살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죄인 된 모습으로 세상에 속하지 못해,
사람 하나 없는 그 세상을 살아야 하는 그 사람을 참으로 살 수 있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정녕 사람 하나 없는 그런 세상을 세상 끝날까지 살아야만 할 그 사람을 보고
비록 세상 끝날까지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한 채 그런 세상을 살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그 한사람을 위해 세상을 버린 한사람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 사랑의 힘으로 죽지 않고 이 세상을 버티며 그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사랑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참으로 살게 한 생명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사람을 위해 세상과 맞바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가 그 사람에게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죄인 된 모습으로 비록 못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다시 그 사람과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100 %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저도 100 % 죄인이라는 것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라는 것는 자기 중심에서 나온 것이며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람이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중심적인 것이 하나도 없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다고 하는 모성조차도
결국 자기중심이 되어 악한 자기애로 돌아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사람이 하는 이성애가 자기 중심적인 악한 자기애가 아니라 할 것이며,
사람이 하는 동성애만 자기 중심적인 악한 자기애라 할 것입니까?
사람이 그렇게 다같이 100 % 죄인입니다.
선한 것이 나올 것이 0.1 %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육체에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의 육체에서 악한 모습이 나왔다고 심히 놀랬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 속에, 100 % 옳으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신다고
사람의 육체에서 100 % 옳은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어서 100% 악한 모습이 나오는 사람의 육체와 50 % 악한 모습이 나오는 사람의 육체가
똑같이 율법에 의해 죄로 죽은 것인데 무슨 차이가 있어서,
100 % 죄인인 사람과 그 중에 여자와, 그 중에서도 창녀를 구분하여
그와 같지 아니한 자신에 대하여 바리새인과 같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겁니까?
성경에 나오는 간음한 여자, 창녀가 실제 창녀를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음녀, 혈루증여자가 따로 세상에서 더 구분할 수 있는 특별죄인인 줄 아십니까?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 사54:5
남편이신 하나님을 떠나 마귀와 연합하여 간음한 모든 사람의 영혼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의 영혼을 음녀로, 창녀로, 잉태치 못한 여자로 비유된 것인데
그들은 모두 비유로 그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비유가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간음한 영혼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섭리가운데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삶을 살도록 만드시고
우리로는 눈으로 보고 그 형상이 무슨 죄를 말하는 것인지 깨달아 알기 위해 말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영적타락이 어떤 것인지 그 본질을 그 형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두 연극처럼 그 되어진 모습들을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영혼의 모습인 줄 모르고 그 모습들로 나타난 사람들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그 앞에서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며 불쌍타 위로하면서
하나님이 그 죄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한다고 하면
정작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영혼의 모습이 그런 형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여
더욱 온전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빗나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볼 줄 알아야한다는 것은, 안 봐도 다 보이는 육체의 죄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육체의 죄 모습에서 그 본질이 무엇인가, 그 본질이 들어있는 자기 영혼의 죄를 보라는 것입니다.
영혼의 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서 숨은 자기 마음의 죄를 보라는 것입니다.
남의 죄를 볼 때도 그 육체의 죄가 아닌 그 마음의 죄를 봐야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죄인지 아는 것입니다.
마음의 죄, 증거는 잡을 수 없어도 눈짓, 입짓에서 높아진 마음이 다 보이잖아요.
보이는 것을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합니다.
무엇이든지 보이지 않는 본질부터 보는 것이 세상의 역리와 반대인 주님의 진리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주장했다는 김영환님이 말씀하신
나를 영적타락시킨 이 세상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왜 나만 죄인인 가요?
이것은 전혀 제 생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저를 영적타락을 시킨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 속에서 나온 저의 영적타락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영적타락과 똑같다는 말씀입니다.
영적타락이 본질이고 육체로 나타난 죄가 현상이라면
진짜 죄는 본질에 있는 것이지 현상에 있는 것이 진짜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된 결과가 있으면 결과부터 따지면 우짭니까? 원인부터 따져야죠.
동성애현상이 죄라면 그 죄의 원인이 되는 영적타락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니
우리 모두에게 동성애의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원인이 모두에게 있는데 그 현상으로 나타나있는 그 사람만 추궁하면
같은 본질에서 나온 물과 얼음과 수증기의 다른 모양을 보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왜 다르냐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이성애의 음란처럼 그런 동성애의 음란이 아닌
진실한 사랑의 근본적인 의미가 있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그런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말하는 그 동성애가 죄가 아니다 라는 말은 저의 주장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저의 삶에서 나온 증거입니다.
그 증거는, 자기들 속에 숨은 죄를 전혀 깨닫지 못한 욥의 세친구들에게 한 욥의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욥의 죄 모습을 보고 세친구들이 욥을 위로를 하기로 서로 약속을 하고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리며 남의 죄를 막 불쌍히 여기다가
죄 있어 죄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괜찮다고,불쌍히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욥의 말에
세친구들이 얼굴을 바꾸고 분을 내며 달겨들어 죄 있어 죄 모습을 한 것이지 왜 죄가 없다고 하느냐고
그때부터 율법을 들이대며 판단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변론에서 세친구들은 욥의 말을 절대 듣지 않았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죄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우리들교회는 절대 우리말을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욥과 같이 폭풍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친히 우리들교회에 증거해주시기 전에는 우리 말을 절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증히 여김을 받고 이 모든 멸시, 조롱 다 받아도
그러나 그 증거를 우리가 우리들교회에 꼭 해야만 하는 것은
폭풍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친히 증거하실 때에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우리들교회로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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