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과 죄
작성자명 [박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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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22
세계의 최고의 골프선수인 타이그 우즈가 자기코치를 통해 레슨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테니스에서 세계의 넘버원인 페드러가 자기 코치를 바꾸어 연습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과연 코치가 필요한가?
저 선수들은 코치보다도 더 실력이 뛰어난데 더 배울게 있을까?
항상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때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운동선수들에겐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나쁜 습관들이 생기게 된답니다.
그래서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고 늘 조심한다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큐티엠에서 변질된 복음을 가지고 억지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논리가 나올 수 있을까 이게 나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나는 그 지체를 잘 모르고 이전에 글도 올렸다 하지만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올린 글을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큐티를 하면서 늘 잘못된 적용과 이상한 논리로 변절되기 전에 내가 속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코치를 받는 것도 필요함도 생각 해보았습니다.
지도자가 큐티를 하시는 분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면 오히려 약간의 혼란만 초래 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을 미연에 막을 수 있고 오히려 도움이 됨을 생각 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지도자를 세워주신 이유가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눈이 좀 열리고 뭔가 알 것 같을 때 지식적으로 교만해서
어느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고 심지여 지도자와 교회까지 대항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언행이 일치 되지 않음도 보아 왔습니다.
교회를 사랑 한다
교회에 붙어 있어야 한다
교회를 위해 하나님 일을 한다 외치면서
교회를 비난하고 자기주장이 교회의 주장보다 더 옳다라는 괴변을 늘어 놓기도 합니다.
피흘려 사신 교회의 중요성도 모르고 성경도 잘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분명 변질된 복음을 제시하면서 자기가 예수님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자기 주장에 동조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핍박하던 유대인이나 대제사장으로 간주하는 그런 모습까지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교회 기도 팀에서 사랑하는 동성애 파터너가 빠진 이유로 소란을 피운 소행은
진정 교회사랑보다도 동성애를 더욱 중이 여기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시대마다 때마다 잊어버릴 만 하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처럼 보입니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몸은 커져 어른 같은데 정신연령과 경험이 부족하기에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데도 거절하는 모습과 유사 합니다.
살면서 한두 번씩 경험하기도 하고 보아 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우둔했다라는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가 나누어지는 일, 목회자기 쫓겨나는 일 등을 보고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복음을 바라보는 순수함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의 충고도 거절하는 교만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고수 해야 하고 그게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연구하는것과 들은것은 분명 다르다고 배웠습니다.
들은 것은 정말 그러한가 겸손한 마음으로 점검하는 자세는 분명 좋은 습관이라고 배웠습니다.
작년에 공부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가 오늘 아침에는 공부그만하고 운동좀 해라,심부름좀 다녀 오라 라고 할수 있기때문입니다.
수많은 논문과 주옥같은 연구들을 휴지통으로 집어넣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겸손과 온유로 옷 입어야 함을 교훈으로 받았습니다.
그분과 상담한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깊은뜻을 몰랐고 성경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알았던 어리석은 행동들이 난무 할때였습니다. 말씀앞에서 항상 겸손함을 강조 하셨습니다.
큐티를 처음 배울때 큐티의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는
교회를 세워가는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그분을 생각해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만날수 없음이 늘 아쉬움으로 다가 옵니다.
좀더 깊게 배워 둘걸 하는 후회도 해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큐티엠에 글을 올림으로서 이런 부작용들이 자동으로 정화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다 다행스러운지 실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과연 죄란 무엇인가 좀 더 깊게 생각 해보면서
연구도 하고 잘 아시는 분께 자문을 구하기도 하겠습니다.
분명한 죄의 개념을 알아야 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큐티에 대해서도 다시 점검 하겠습니다.
죄란 관계성에서 발생하는데 특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허물과 죄를
묵상해보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이전에 형들과 요셉의 상봉에서 그들의 죄가 다 해결 된줄 이해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형들이 요셉에대한 죄와 허물이 무너짐을 본문에서 발견 하였습니다.
요셉의 울음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 오는 아침입니다.
아버지의 충고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17절 요셉이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찌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