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이런 소망을...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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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21
창 49:29~50:14
지금까지 많은 죽음을 지켜 보았습니다.
친정아버지의 죽음도,
시어머니의 죽음도,
지체들의 죽음도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죽음 조차도 삶의 결론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영혼 구원에 애통했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죄와 싸우면서 하나님을 증거했는지,
장례식에 가면 뭔가 보여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친정아버지는,
그렇게 큰 죄를 지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장례식은 큐티엠 식구들을 비롯해,
부모님과 자식들이 재직하는 다섯교회가 번갈아 가며 예배를 드렸고,
아들과 사위가 다니는 회사 직원, 친구, 친지들까지 포함해 그 떼가 심히 컸었으니까요.
물론 아버지의 매장지를 기억하며,
구원 받는 떼가 심히 큰 것이 아닌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셀 수 없이 예배를 드렸으니 감사합니다.
아마 그것은,
죄를 회개하신 아버지가,
남은 인생을 죽은 자와 방불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다 가셨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수요예배에,
토마스선교사님에 대한 영상을 보며 또 다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 분의 짧은 일생 중에,
제일 은혜를 받는 것은 역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몇 십년 복음을 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오시지마자 죽임 당한 것이 전부인데도,
그 죽음은 언제나 강렬한 멧세지를 줍니다.
오늘, 야곱이 죽어,
가나안에 있는 매장지로 돌아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저런 죽음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일지 모를,
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감히 이런 소망을 가져 봅니다.
저의 죽음도,
저의 신앙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고난들이,
저의 죄가 죽은 매장지로 기억되는 죽음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 매장지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지체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의 죽음이 어떤건지,
세상의 애굽 사람에게 멧세지를 주는 죽음이 되었으면 좋겠고,
약속의 땅에 있지만 믿음 없이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에게도,
뭔가 보여주는 죽음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야곱의 긴 장례식 일정만큼이나,
오랜 시간 기억해 줄 죽음이 되었으면 좋겠고..
세상의 향품이 아닌,
말씀의 향품으로 장식 되는 죽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상오는 떼가 큰 것이 아니라,
그 죽음으로 구원 받는 떼가 심히 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하루 잘 살 수 있기를 간구드립니다.